쿤달리니 요가에 따르면 사마디는 남성의 원리인 시바와
여성의 원리인 샥티의 결합체라고 한다.
'쿤달리니샥티' 라 불리는 샥티가 머무는 곳은
첫 번째 챠크라인 물라다라 챠크라(골반신경총 : Khanda) 이며,
시바가 머무는 곳은 일곱 번째 챠크라인 사하스라라 챠크라(백회) 이다.
쿤달리는 물라다라 챠크라 내(Khanda)에서 마치 뱀처럼
또아리를 튼채 조용히 잠자고 있다.
수행자에게 자아 실현의 열망이 밀려오거나 여덟 가지의 경로를 추구할 때
쿤달리는 첫 번째 챠크라인 물라다라 챠크라에서 깨어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챠크라를 따라
상승하여 신神의 제왕인 Kameshvara 즉, 사랑의 신과 결합하기 위해
일곱 번째 챠크라인 사하스라라 챠크라(백회)에 도달한다.
이 결합은 수행자들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며,
신성한 자각에 이르는 문을 열어 준다.
쿤달리니 Kundalini 란 무엇인가?
쿤달리니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쿤달(Kundal)-감겨있는' 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잠을자고
휴식을 취하는 뱀의 모양에 비유된다.
뱀과 쿤달리니의 유사성은 그 움직임, 즉 나선형으로
또아리를 튼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쿤달리니는 호기(날숨)과 흡기(들숨)를 이용하여 인체내의
모든 존재들을 유지시키는 생명력이다.
쿤달리니는 유有와 무無의 속성을 모두 지닌 영원한 최고의 의식상태이다.
'무(Nirguna)'의 양식으로는 우주 의식의 의지이며 순수한 의식이다.
'유(Saguna)'의 양식에서 이 에너지는 샥티로 구체화된,
혹은 원시 에너지와 같은 위대한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체 내에서 창조되는 모든 에너지도 쿤달리니의 힘을 통한 것이다.
우리 몸 속에는 존재에 관계된 모든 형태에 둘러쌓인,
정적 중심부의 모습과 똑같은 에너지가 잠들어 있다.
현세의 모든 활동의 이면에는 항상 정적인 배경의 힘이 존재한다.
하타 요가와 탄트라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현상 세계에 나타나는
정적, 동적 에너지를 '쿤달리니'라고 정의한다.
동적 에너지는 그 생존 현상에 의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되고,
정적 에너지는 평상시에 작용되고 있는 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
이 잠재 에너지가 일깨워지게 되면
'나디(Nadis)' 들을 통해서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나디(Nadis)' 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나드(Nad)-이동' 을 의미한다.
인생에 무언가 고차원적 목적 -'보통 깨어있고 잠자고 꿈꾸는 상태를
초월한 다른 의식'이 있다고 느끼거나,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거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충족되었거나, 현상 세계에 대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초연의 상태, 혹은 내향성을 경험하게 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마치 뱀처럼 감겨져 있는
쿤달리니 에너지를 깨우는 사람 만이 진정한 해방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타요가-프라디피가, 제3장 - 105~110절)
샥티 자극 무드라
3.103 쿠티랑기, 쿤달리니, 부장기, 샥티, 이슈바리, 쿤달리니, 아룬다티 등은 모두
샥티 자극의 동의의 이다.
3.104 마치 열쇠로 문을 열 수 있는 것처럼, 요가행자는 하타 요가(수행으로 각성된)
쿤달리니를 이용하여 해탈의 문을 열어야 한다.
3.105 이 지고한 여신 쿤달리니는 고통이 없는 브라만의 동굴로 가는 길 입구를
얼굴로 막고 잠자고 있다.
3.106 쿤달리니 샥티는 칸다(Khanda)에서 잠자고 있다. 이것이 요가행자에게는
해탈의 원인이 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속박의 원인이 된다.
이 여신을 아는 자 만이 요가를 안다.
3.107 쿤달리니는 꼬리를 감고 있는 뱀과 같다.
이 샥티를 움직여 나가게 하는 자는 틀림없이 곧 해탈에 이를 수 있다.
3.108 강과 강과 야무나 강의 두 강 중간에 젊은 여자 고행자를 힘껏 붙잡아라.
그것이 요기를 비슈누가 머무는 지고한 처소로 인도한다.
3.109 성스런 강가 강은 아다나디이고, 야무나 강은 핑갈라 나디이다.
이다와 핑갈라의 중간에 있는 젊은 여자란 쿤달리니를 말한다.
3.110 이 잠자고 있는 뱀의 꼬리를 잡고 깨워야 한다.
그러면 그 여인은 잠에서 깨어나 강력하게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3.111 항상 활기 없이 누워 있는 이 뱀을 오른 코로 숨을 마신 후 파리나다2) 방법으로 잡아서
아침 저녁으로 1시간 30분씩 움직이게 한다.
3.112 칸다의 위치는 항문에서 12지(약 22cm) 위쪽에 있으며, 넓이는 4지(약 7.3cm) 정도이다.
부드럽고 흰색이며 접은 의복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3.113 금강좌를 하고 양손으로 양 발목 근처를 꽉 잡고 칸다의 부위를 강하게 압박한다.
3.114 수행자가 금강좌로 앉아서 풀무 호흡으로 쿤달리니를 움직이게 하면
쿤다리니는 곧 눈을 뜰 것이다.
3.115 배꼽 주위에 있는 태양을 수축하여 쿤달리니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러면 비록 죽음의 문턱에 있어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3.116 1시간 30분 동안 두려움 없이 이 쿤달리니를 움직이게 한다면
쿤달리는 수슘나 나디 속으로 들어가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3.117 이렇게 하면 쿤달리니는 수슘나 기도의 문을 확실하게 열 것이다.
그러면 프라나는 수슘나 나디 속을 호른다.
3.118 그러므로 조용히 자고 있는 쿤달리니 여신을 매일 운동시켜야 한다.
요가행자는 단순히 쿤달리니를 운동시키는 것 만으로도 질병에서 벗어 날 수 있다.
3.119 샥티 여신을 운동시키는 수행자는 초능력의 소유자가 된다.
이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마치 유희하듯이 죽음을 정복할 것이다.
3.120 금욕의 삶을 즐기고 언제나 건강에 좋은 음식물을 절도있게 섭취하는
쿤달리니 단련자에게는 40일이면 초능력이 발현된다.
3.121 쿤달리니를 움직여 나오게 한 다음에는 특히 풀무 호흡을 많이 해야 한다.
매일 이와 같이 수행하는 요가행자에게
어찌 죽음의 신에 대한 공포가 있을 수 있겠는가.
3.122 72,000개의 나디에 있는 오물을 청소하는 데는
쿤달리니 수행 이외에 어떠한 방법도 어ㅄ다.
3.123 중앙의 나디인 수슘나는 요가행자가 체위, 호흡, 무드라 등을
엄격하게 수행함으로써 바르게 된다.
3.124 수행할 때 잠에 떨어지지 않고
삼매로 마음 작용을 움직이지 않게 보존한 사람들은
미간 응시 무드라 또는 그 밖의 다른 무드라로 유익한 초능력을 얻는다.
라자 요가의 필요성
3.125 라자 요가가 없으면 어떤 아름다운 대지(아사나)도, 밤(프라나야마)도,
무드라도 쓸모가 없다.
3.126 모든 호흡법은 정신을 통일해서 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 작용이 수행하는 대상
6단계 : 다라나(Dharana) 집중법(응념)
'요가수트라'에서 응념은 '마음이 어느 장소에 결부되는 것' 이라고 했다.
정신집중법(사고의 구심적 수련) 다라나(Dharana)는
어떤 한 가지 중심점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집중력이다.
'요가수트라' 제3장 1절
응념(Dharana)은 마음(Citta:치타)을 한 곳에 매어두는 것이다.
요가에서는 마음을 어느 한 장소에 결속시킴으로써 마음의 작용을 제어한다.
요가에서는 미간이나 코끗, 뒷머리, 심장, 배꼽 등에 의식을 집중하는데
어디든지 일정한 곳이면 좋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이든 외계의 대상을 보고 의식을 집중하는 수련이 되면
사물의 판단력이 생기고 정신이 안정된다.
그리하여 외계로부터의 자극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심장은 마음을 고정시키는 중심부이며,
산스크리트어로 '지바(Jiva)' 라 불리우는 개인 의식의 중심부로서 인식되어 왔다.
두뇌는 감각과 마음의 중심부이지만 심장은 생명의 중심부이다.
두뇌의 기능(사마디 내에서의)은 인위적으로 중시시킬 수 있지만,
심장은 완전히 중지되면 생명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쿤달리니 요가에서 심장은 일곱 개의 챠크라 중 가장 가운데의
중심 챠크라(Dharana)로 간주되며, 일곱 개의 챠크라 중 네 번째 챠크라로써
세 개의 챠크라가 그 밑에 위치하고, 세 개의 챠크라는 그 위에 위치한다.
다라나에서 각 챠크라는 마음을 고정시키는 중심점이 된다.
각 챠크라의 집중은 첫 번째인 물라다라 챠크라에서 끝난다.
다라나(Dharana)의 수련은 마음의 습관적 일관성을 만들어 준다.
각 챠크라는 다섯 가지 요소와 적어도 한 가지씩, 혹은 그 이상 관련을 맺고 있는 까닭에
각 중심부에 마음을 고정시키면,
각 요소의 집중을 도울 수 있다. 또한
각 요소에 대한 집중은 마음이 일관성을 지니고 고정되도록 도와 준다.
쿤달리니 요가에서 심장은 일곱 개의 챠크라 중 가장 가운데의
중심 챠크라(Dharana)로 간주되며, 일곱 개의 챠크라 중 네 번째 챠크라로써
세 개의 챠크라가 그 밑에 위치하고, 세 개의 챠크라는 그 위에 위치한다.
다라나에서 각 챠크라는 마음을 고정시키는 중심점이 된다.
각 챠크라의 집중은 첫 번째인 물라다라 챠크라에서 끝난다.
다라나(Dharana)의 수련은 마음의 습관적 일관성을 만들어 준다.
각 챠크라는 다섯 가지 요소와 적어도 한 가지씩, 혹은 그 이상 관련을 맺고 있는 까닭에
각 중심부에 마음을 고정시키면,
각 요소의 집중을 도울 수 있다. 또한
각 요소에 대한 집중은 마음이 일관성을 지니고 고정되도록 도와 준다.
응념(Dharana)이란 마음을 한 곳에 매는 것이다.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기 위해라고 응념의 목적을 제시한다.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을 해야 한다
모든 것이 응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초능력 개발에서 총제되는 대상은
모두 응념의 대상이 된다.
응념은 자신의 배꼽, 심장, 코끝이나 그 밖의 외부 대상이다.
그러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은 아니며, 그것은
'드야나(Dhyana)' 라고 하는 깊고도 흔들리지 않는 명상을 위한 수련일 뿐이다.
모두 응념의 대상이 된다.
응념은 자신의 배꼽, 심장, 코끝이나 그 밖의 외부 대상이다.
그러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은 아니며, 그것은
'드야나(Dhyana)' 라고 하는 깊고도 흔들리지 않는 명상을 위한 수련일 뿐이다.
7단계 : 정려(Dhyana) 명상법
'요가수트라' 제3장 2절
정려 또는 선정(Dhyana)은 무상, 무념, 무심의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을 말한다.
그 한 곳의 의식작용이 한결같이 집중된 상태이다.
이를 '같은 것의 흐름(Sadrsah Pravahah)' 이라고도 한다.
사고의 원심적 수련, 의식의 확장,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과 하나가 되어
무념, 무상, 무심의 상태로 들어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상통하게 된다.
정려는 응념되고 있는 대상에 의식작용이 한결같다.
정려의 대상은 응념의 대상과 같지만, 그 심리상태는 응념과 정반대이다.
대상에 대한 의식의 작용이 확대되어 가는 생각의 흐름이다.
구심적인 응념에 반대되는 원심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요가의 목표는 삼매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지혜이다.
요가명상의 특징은 기초단계의 접근이 지식을 넓히거나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고, 심작용을 억제하는 심리 현상이다.
'디야나(Dhyana)'는 아무런 대상도 없는 '무'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명상이다.
바로 전단계인 다라나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 이미지, 챠크라와 중심부에
관한 집중에 대해 논한 바 있다.
다라나(Dharana)의 지속적인 수련으로 인해 수행자는 마음을 고요하고
침잠시킴으로써 진정한 명상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을 고정시켰을 때 마음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고 고요해진다.
척추 내의 에너지 흐름이 느껴지고, 사고 또는 내부 대화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는 고요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라나(Dharana)에서는 챠크라에 차례로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드야나(Dhyana)에서 명상을 하면 챠크라의 의식이 사라진다.
다라나에서는 가끔식 마음의 번민이 발생한다.
챠크라의 시각화까지도 마음의 번민을 유도한다.
그러나 드야나에서는 이 시각화마저도 멈추어 진다.
마음에 고요함이 깃들고 사고의 공허함이 감돈다.
행복이 시작이 경험되는 곳도 바로 이 속이다.
이 의식은 이제 깊은 수면과 꿈, 깨어있는 일반적 상태를 초월한 제 4의 상태로 들어간다.
이것을 가리켜 현대 정신의약 용어로는 '의식의 변형상태' 라고 부르며
요기들 사이에서는 '투리야(Turiya)라고 불리운다
※ 다라나의 결실은 드야나이며, 드야나의 결실은 '사마디'이다
8단계 : 삼매법(Samadhi)
해달, 깨달음의 상태, 최대지혜, 평온, 만족의 상태로 완전한 자유이며,
인간의 의지가 아닌 저절로 얻어 지는 경지
즉,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보는 유종삼매와
그 대상도 의식도 없는 무종삼매에 이르러 해탈한다.
삼매는 정려의 대상만 마음속에 빛나고 그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객체만 있고 주체는 사라진 상태인데, 이것은 자기마음에 대상이 주는
사실성만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무의식상태가 아니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하나의 하나로 묶여 있는 합일상태가 삼매이다.
'사마디(Samadhi)' 라고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말,
'삼(Sam : 동등, 균형, 완전)'
'아(a : 영원)'
'디(dhi : 깨달음, 인식, 지식)'
의 복합어이다.
인간이 완전한 평형상태에 도달할 때 거기에 사마디(Samadhi)가 있다.
'요가수트라' 제3장 3절
그 선정이 한결 같은 상태에 있어서, 그 대상 만이 빛나고,
자기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이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삼매(Samadhi) 이다.
5절에서는
그것을 수득함으로써 예지는 빛난다
고 한 것처럼 삼매는 빛나는 예지이다.
진아가 나타나는 것인 이 상태에서다.
개인 의식으로서의 사마디(Samadhi)는 시간과 공간,
자아의 인식으로부터 벗어난 자아실현, 즉 신아합일의 상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