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7일 화요일

쿤달리니 - 차크라의 기능과 작용



차크라의 기능과 작용
 
 

(퍼온 글입니다)
 




차크라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 생명의 바퀴, 이 에너지 보텍스는 여러분 존재에 생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동양에서는 이를 전통적으로 차크라(Chakra)라고 부릅니다.





이 차크라는 여러분이 모든 영혼의 정수와 연결자 역할을 합니다.
이들은 타원형의 빛의 구체로 큰 계란과 닮았으며,
여러분의 육체 바깥으로 약 3~5피트 정도까지 확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텍스는 전자기적인 에너지의 수신자이고 전달자입니다.





각 보텍스(차크라)는 의식(각성)의 레벨에 상응하여 작용하며,
에너지와 사념체(Thought Form)가 차크라 시스템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척추의 기저 부분에는 첫 번째 차크라인 생존 차크라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일상적 시간 동안에 여러분은 물질적 신체에 여러 생명력을 부여하는 기능과
기능을 작용케 하는 호흡, 음식물의 소화 등 생존의 기본 요소에 직접적인 관여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죽음과 두려움의 사념, 질병과 파괴의 사념에 집중하게 되면,
여러분은 이 생존 차크라의 자연스러운 에너지 흐름을 방해하고 혼란시키게 됩니다.
 





배꼽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두 번째 차크라는 성(性)과 창조의 차크라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있어서 대부분 이 에너지 보텍스는
대단히 자연스럽게 깨어 있으며 사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성(性)과 출산(出産)과 창조적인 표현은 기본적으로 몸과 그 경험 자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사회는 이 자연적인 과정을 문제가 있는 것처럼 도덕적인 문제로 만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에 따른 죄책감과 두려움, 억압, 혼란, 분노와 자기증오 등은
성 차크라 속에서 생명 에너지의 흐름에 장애를 만듭니다.
 





태양신경총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세 번째 차크라는 내면의 태양입니다.
이는 의지와 힘을 통해서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활성화하고 촉진시켜주는 에너지 센터입니다.
염원이 달성되고 구현되는 것은 이 에너지 보텍스를 통해서입니다.
두려움과 무기력과 혼란은 여러분의 내적 사념이 구현될 수 있도록
에너지를 부여해 주는 이 차크라의 힘을 멈추게 합니다.
 





네 번째 차크라는 가슴 중앙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는 가슴 차크라로 우주의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주는 사랑을 통해서 작용하는 에너지 보텍스입니다.





이 가슴 차크라는 가슴 위에 있는 3개의 영적 차크라와 가슴 아래에 있는
3개의 지구적 차크라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차크라는 사념이 형상을 취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하는 에너지 보텍스입니다.





전기 에너지화한 작은 패턴의 사념 다발이 이 가슴 차크라에 도착하면
모든 창조적인 표현을 묶어주는 에너지로 활성화됩니다,
하지만 슬픈감정, 분리감, 자기증오와 두려움 등은
 이처럼 하나로 묶어서 통합시키는 과정을 멈추게 합니다.





 
목의 인후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다섯 번째 차크라는
통신 차크라로서 이는 창조적 표현의 바로 아래 레벨의 역할을 합니다,
이 인후 차크라는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 구현되게 하는 차크라입니다.





이는 정신의 영역, 즉 에텔의 영역으로 여기서는 사념적 존재가 5차원적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 통신 차크라는 영감(靈感)을 통해 생각을 나타내고 이 생각을 응집된 개념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두려움과 우둔, 공격성, 쓸데없는 사념들은 통신의 오류와 혼란을 초래하면서
이 통신 차크라를 정체시키거나 마비시킵니다.





 
앞머리 이마의 중심 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여섯 번째 차크라는 ‘제3의 눈’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통찰력(차원간 투시), 직관(내적 인식)과 심령적 능력(육체적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능력)을
제공합니다.





이 심령 차크라는 영감을 담당하며, 다른 차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수용 기관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또 이 차크라는 영혼과 창조의 센터로 기능을 합니다.
그리고 미지의 두려움, 불청(不聽)과 불가시(不可視)의 두려움을 해소시켜주며
분리감의 원인과 무지와 자기 가치의 상실감을 개선시켜 줍니다.
 





일곱 번째 차크라는 머리의 정수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으며,
천 개의 연꽃잎을 가진 형태로 왕관(Crown) 차크라라고 부릅니다.
이 차크라는 최고의 진동 수신자이며 지식적 앎을 초월한 참다운 앎의 출입구 역할을 합니다.
이 크라운 차크라는 직접 (성령의 영혼들과 성령 속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이 차크라는 신의 능력, 영혼의 정수, 고차원 자아와 모든 것을 알고
경험함으로써 얻어지는 평화를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수용 기관입니다.





그러나 쓸데없고 무가치한 사념들과 삶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전능한 근원의 힘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을 막습니다.
 





참다운 건강은 물질적 신체에 활력을 주면서
자연스러운 에너지 보텍스의 흐름 속으로 이완해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완하고 편안하십시오.
마음과 근육과 삶의 에너지를 편안하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잠재의식과 그 마음은 단순히 물질세계를 보고 듣고 느끼고 통신하는 도구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활동에서 90%는 여러분의 의식적인 마음으로 컨트롤되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마음은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고 병의 원인이 됩니다.
때문에 항상 편안하십시오.
 
* 익제카는 오리온 성좌 속에 있는 한 비물질적 행성인 인터레이더(Interraithe)의 12위원회 조정자이다.
그리고 과거 지구상에서 고대 마야 문명의 케즈탈라틀(Queztalatl)이고
구약 시대의 예언자 엘리야였으며, 또한 고대 이집트의 아임호텝이었다.
아임호텝(Imhotep)은 고대 이집트에서 “의술의 신(神)” “평화의 왕자”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기원전 2850년경부터 기원전 525경까지 하나의 신 내지는 치유가로 숭배되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도 “평화의 왕자”로 숭앙의 대상이었으며, 약 3,000년간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신으로 숭배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사제, 건축가, 천문학자, 마법사, 시인, 철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아임호텝은 이집트 3왕조 시대의 왕 Zoser의 궁정에서 살았었고, 이집트인들이 고대에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 문화의 토대를 놓았을 때 그의 가르침들이 그리스에 이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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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요가체계의 입장에서 차크라에 대해 설명해 놓은 글도 많지만
이 익제카 채널링글이 간략하게 잘 설명해주고 있고
너무나 중요한 포인트를 담고 있어 이 가르침을 담아와서 소개합니다.

 
익제카가 설하듯이 각 차크라의 원활한 작용을 위해서는 우선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이완하는 것이 가장 가장, 중요합니다 !!!

 
제가 아는 가장 쉽고 안전한 길은 올바른 삶을 살고
근원과 우주와 생명을 향한 사랑과 평화와 겸허함, 그리고 감사의 마음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인도의 전통에서는 박티요가라고도 불리는 길이죠.

 
그리고 순간순간 현재에 깨어 있으면서 자신 내면에서 일어나는 고통 , 슬픔 ,
좌절 , 불안들에 주의를 빼앗기지도 말고 억압하지도 말고 그저 바라보고 흘러가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관법은 고통체를 점점 약화시켜줍니다.
또 이러한 자연스런 관법은 수행상에 있어 효과적이고도 안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만일 자신의 고통에 집중하여 말려들어 괴로와하게 되면 에너지를 얻은 고통체는
더 활성화되고 또 다른 고통들을 끌어들이게 되는 동인이 됩니다.

 
만약 이 관법이 잘 맞지않으면 호오포노포노라고 알려져 있는
내면분석과 참회법을 통해 강력한 정화를 행해 보세요.
이 방법을 수행해보니까 따로 빛명상을 하지않아도 내면이 빛으로 가득 차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항상 근원을 향한 감사와 사랑에 머물고 그렇게 되기를 항상 기도해보세요.
마음과 영혼이 감사와 사랑에 촛점을 맞추게 되면 쿤달리니 요가를 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에너지 볼텍스들은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열리게 되고
우주의 근원에너지들이 흘러들어와 몸과 영혼이 활기와 생명을 주는 빛으로 충전될거예요.

 
차크라를 의식적으로 컨트롤하고 급하게 일깨우려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에너지의 볼텍스가 자연스럽게 활현하는 것을 방해하고 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저는 한 선도 단체에서 정말 단전호흡을 열렬히 수행하던 수행자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것도 보았고,
대주천을 이루었다는 사람들이
심하게는 빙의, 정신분열, 현실도피의 폐인 수준으로 가고
약하게는 자신이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에고 인플레이션이 일어나
인격의 성숙이 정지되고 아상 속에 갖히게 되는 예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또 저 자신 또한 가슴 속에 화가 있거나 고통스런 상태에서
충분한 이완없이 집중명상했을때 심한 상기증이 생겨서 고생한 경우가 있었어요.

 
하단전 호흡으로 축기하여 "의도적으로" 기를 운행하고 양신을 키워가는
도교의 기본 오리엔테이션이 일차적으로 자신에 대한 봉사이고 자기 자신에
촛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같이 느껴져서 저는 별로 끌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오로지 힘을 추구하는 이들은 이런 명상을 통해 흔히 오만과 무지에 도달합니다.

신과 근원을 사랑하고 다른 이들에게 봉사하는
우주의 모든 생명들에게 가슴을 여는 그런 가르침들이 더 좋지 않나요?.

 
제가 앞의 게시글에서 아이반호프가 설한 하단전의 영적인 의미에 대한 글을 올렸는데요,
저는 하단전이 우리의 하위자아와 무위식을 통합해가는 중요한 통로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하위 자아와 무위식의 통합없이는
온전한 깨달음 - 상위 자아의 깨달음과 합일도 가능하지 않다는 가르침으로요.
 
글을 읽으신 분들도 그냥 참고 정도로 하시고
무리하게 단전호흡을 혼자서 (인도하는 선생님없이) 시도하시지 않길 바래요.

 
혼자서 단전 수행을 하여 건강을 되찾고 싶으신 분들은 가벼운 하타요가나 아사나,
혹은 하단전의 파워하우스를 이용하여 모든 동작을 하는 라테스를 해보시길 권합니다.

이상 노파심에서 제가 아는 한에서 말씀드렸구요.
 
명상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기본은
바른 통찰과 생활,
이완과 평온한 마음이란 걸 다시 한번 강조할께요.
감사합니다.
 
작성자 ; R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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