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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8일 화요일

쿤달리니 Kundalini 와 사마디 Samadhi

쿤달리니 요가에 따르면 사마디는 남성의 원리인 시바와
여성의 원리인 샥티의 결합체라고 한다.

'쿤달리니샥티' 라 불리는 샥티가 머무는 곳은
첫 번째 챠크라인 물라다라 챠크라(골반신경총 : Khanda) 이며,
시바가 머무는 곳은 일곱 번째 챠크라인 사하스라라 챠크라(백회) 이다.

쿤달리는 물라다라 챠크라 내(Khanda)에서 마치 뱀처럼
또아리를 튼채 조용히 잠자고 있다.
수행자에게 자아 실현의 열망이 밀려오거나 여덟 가지의 경로를 추구할 때
쿤달리는 첫 번째 챠크라인 물라다라 챠크라에서 깨어나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챠크라를 따라
상승하여 신神의 제왕인 Kameshvara 즉, 사랑의 신과 결합하기 위해
일곱 번째 챠크라인 사하스라라 챠크라(백회)에 도달한다.

이 결합은 수행자들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며,
신성한 자각에 이르는 문을 열어 준다.

쿤달리니 Kundalini 란 무엇인가?


쿤달리니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쿤달(Kundal)-감겨있는' 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또아리를 틀고 앉아서 잠을자고
휴식을 취하는 뱀의 모양에 비유된다.
뱀과 쿤달리니의 유사성은 그 움직임, 즉 나선형으로
또아리를 튼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쿤달리니는 호기(날숨)과 흡기(들숨)를 이용하여 인체내의
모든 존재들을 유지시키는 생명력이다.

쿤달리니는 유有와 무無의 속성을 모두 지닌 영원한 최고의 의식상태이다.
'무(Nirguna)'의 양식으로는 우주 의식의 의지이며 순수한 의식이다.
'유(Saguna)'의 양식에서 이 에너지는 샥티로 구체화된,
혹은 원시 에너지와 같은 위대한 여신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인체 내에서 창조되는 모든 에너지도 쿤달리니의 힘을 통한 것이다.
우리 몸 속에는 존재에 관계된 모든 형태에 둘러쌓인,
정적 중심부의 모습과 똑같은 에너지가 잠들어 있다.

현세의 모든 활동의 이면에는 항상 정적인 배경의 힘이 존재한다.

하타 요가와 탄트라 경전의 설명에 따르면 모든 현상 세계에 나타나는
정적, 동적 에너지를 '쿤달리니'라고 정의한다.

동적 에너지는 그 생존 현상에 의해 소모되는 에너지가 되고,
정적 에너지는 평상시에 작용되고 있는 의식 속에 잠자고 있다.

이 잠재 에너지가 일깨워지게 되면
'나디(Nadis)' 들을 통해서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나디(Nadis)' 란 단어는 산스크리트어로 '나드(Nad)-이동' 을 의미한다.

인생에 무언가 고차원적 목적 -'보통 깨어있고 잠자고 꿈꾸는 상태를
초월한 다른 의식'이 있다고 느끼거나, 자아를 인식하기 시작하거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 충족되었거나, 현상 세계에 대해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은 초연의 상태, 혹은 내향성을 경험하게 된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형태로 마치 뱀처럼 감겨져 있는
쿤달리니 에너지를 깨우는 사람 만이 진정한 해방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타요가-프라디피가, 제3장 - 105~110절)

샥티 자극 무드라


  3.103 쿠티랑기, 쿤달리니, 부장기, 샥티, 이슈바리, 쿤달리니, 아룬다티 등은 모두
            샥티 자극의 동의의 이다.

  3.104 마치 열쇠로 문을 열 수 있는 것처럼, 요가행자는 하타 요가(수행으로 각성된)
            쿤달리니를 이용하여 해탈의 문을 열어야 한다.

  3.105 이 지고한 여신 쿤달리니는 고통이 없는 브라만의 동굴로 가는 길 입구를
            얼굴로 막고 잠자고 있다.

  3.106 쿤달리니 샥티는 칸다(Khanda)에서 잠자고 있다. 이것이 요가행자에게는
            해탈의 원인이 되고 어리석은 자에게는 속박의 원인이 된다.
            이 여신을 아는 자 만이 요가를 안다.

  3.107 쿤달리니는 꼬리를 감고 있는 뱀과 같다.
            이 샥티를 움직여 나가게 하는 자는 틀림없이 곧 해탈에 이를 수 있다.

  3.108 강과 강과 야무나 강의 두 강 중간에 젊은 여자 고행자를 힘껏 붙잡아라.
            그것이 요기를 비슈누가 머무는 지고한 처소로 인도한다.

  3.109 성스런 강가 강은 아다나디이고, 야무나 강은 핑갈라 나디이다.
            이다와 핑갈라의 중간에 있는 젊은 여자란 쿤달리니를 말한다.

  3.110 이 잠자고 있는 뱀의 꼬리를 잡고 깨워야 한다.
            그러면 그 여인은 잠에서 깨어나 강력하게 위로 오르기 시작한다.

  3.111 항상 활기 없이 누워 있는 이 뱀을 오른 코로 숨을 마신 후 파리나다2) 방법으로 잡아서
            아침 저녁으로 1시간 30분씩 움직이게 한다.

  3.112 칸다의 위치는 항문에서 12지(약 22cm) 위쪽에 있으며, 넓이는 4지(약 7.3cm) 정도이다.
            부드럽고 흰색이며 접은 의복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3.113 금강좌를 하고 양손으로 양  발목 근처를  꽉 잡고 칸다의 부위를 강하게 압박한다.

  3.114 수행자가 금강좌로 앉아서 풀무 호흡으로 쿤달리니를 움직이게 하면
            쿤다리니는 곧 눈을 뜰 것이다.

  3.115 배꼽 주위에 있는 태양을 수축하여 쿤달리니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
            그러면 비록 죽음의 문턱에 있어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다.

  3.116 1시간 30분 동안 두려움 없이 이 쿤달리니를 움직이게 한다면
            쿤달리는 수슘나 나디 속으로 들어가 조금씩 위로 올라간다.

  3.117 이렇게 하면 쿤달리니는 수슘나 기도의 문을 확실하게 열 것이다.
            그러면 프라나는 수슘나 나디 속을 호른다.

  3.118 그러므로 조용히 자고 있는 쿤달리니 여신을 매일 운동시켜야 한다.
            요가행자는 단순히 쿤달리니를 운동시키는 것 만으로도 질병에서 벗어 날 수 있다.

  3.119 샥티 여신을 운동시키는 수행자는 초능력의 소유자가 된다.
            이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는 마치 유희하듯이 죽음을 정복할 것이다.

  3.120 금욕의 삶을 즐기고 언제나 건강에 좋은 음식물을 절도있게 섭취하는
            쿤달리니 단련자에게는 40일이면 초능력이 발현된다.

  3.121 쿤달리니를 움직여 나오게 한 다음에는 특히 풀무 호흡을 많이 해야 한다.
            매일 이와 같이 수행하는 요가행자에게
            어찌 죽음의 신에 대한 공포가 있을 수 있겠는가.

  3.122 72,000개의 나디에 있는 오물을 청소하는 데는
            쿤달리니 수행 이외에 어떠한 방법도 어ㅄ다.

  3.123 중앙의 나디인 수슘나는 요가행자가 체위, 호흡, 무드라 등을
            엄격하게 수행함으로써 바르게 된다.

  3.124 수행할 때 잠에 떨어지지 않고
            삼매로 마음 작용을 움직이지 않게 보존한 사람들은
            미간 응시 무드라 또는 그 밖의 다른 무드라로 유익한 초능력을 얻는다.

라자 요가의 필요성


  3.125 라자 요가가 없으면 어떤 아름다운 대지(아사나)도, 밤(프라나야마)도,
            무드라도 쓸모가 없다.

  3.126 모든 호흡법은 정신을 통일해서 해야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마음 작용이 수행하는 대상

6단계 : 다라나(Dharana) 집중법(응념)


'요가수트라'에서 응념은 '마음이 어느 장소에 결부되는 것' 이라고 했다.
정신집중법(사고의 구심적 수련) 다라나(Dharana)는
어떤 한 가지 중심점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집중력이다.

'요가수트라' 제3장 1절

     응념(Dharana)은 마음(Citta:치타)을 한 곳에 매어두는 것이다.
     요가에서는 마음을 어느 한 장소에 결속시킴으로써 마음의 작용을 제어한다.

요가에서는 미간이나 코끗, 뒷머리, 심장, 배꼽 등에 의식을 집중하는데
어디든지 일정한 곳이면 좋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이든 외계의 대상을 보고 의식을 집중하는 수련이 되면
사물의 판단력이 생기고 정신이 안정된다.
그리하여 외계로부터의 자극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심장은 마음을 고정시키는 중심부이며,
산스크리트어로 '지바(Jiva)' 라 불리우는 개인 의식의 중심부로서 인식되어 왔다.

두뇌는 감각과 마음의 중심부이지만 심장은 생명의 중심부이다.
두뇌의 기능(사마디 내에서의)은 인위적으로 중시시킬 수 있지만,
심장은 완전히 중지되면 생명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한다.


쿤달리니 요가에서 심장은 일곱 개의 챠크라 중 가장 가운데의
중심 챠크라(Dharana)로 간주되며, 일곱 개의 챠크라 중 네 번째 챠크라로써
세 개의 챠크라가 그 밑에 위치하고, 세 개의 챠크라는 그 위에 위치한다.
다라나에서 각 챠크라는 마음을 고정시키는 중심점이 된다.
각 챠크라의 집중은 첫 번째인 물라다라 챠크라에서 끝난다.

다라나(Dharana)의 수련은 마음의 습관적 일관성을 만들어 준다.
각 챠크라는 다섯 가지 요소와 적어도 한 가지씩, 혹은 그 이상 관련을 맺고 있는 까닭에
각 중심부에 마음을 고정시키면,
각 요소의 집중을 도울 수 있다. 또한
각 요소에 대한 집중은 마음이 일관성을 지니고 고정되도록 도와 준다.
응념(Dharana)이란 마음을 한 곳에 매는 것이다. 마음의 산란함을 없애기 위해
하나의 대상에 마음을 집중시키는 수행을 해야 한다 
라고 응념의 목적을 제시한다.

모든 것이 응념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초능력 개발에서 총제되는 대상은
모두 응념의 대상이 된다.
응념은 자신의 배꼽, 심장, 코끝이나 그 밖의 외부 대상이다.

그러나 마음을 고정시키는 것이 최종 목적은 아니며, 그것은
'드야나(Dhyana)' 라고 하는 깊고도 흔들리지 않는 명상을 위한 수련일 뿐이다.




7단계 : 정려(Dhyana) 명상법

'요가수트라' 제3장 2절
     정려 또는 선정(Dhyana)은 무상, 무념, 무심의 상태가 계속 되는 것을 말한다.
     그 한 곳의 의식작용이 한결같이 집중된 상태이다.
     이를 '같은 것의 흐름(Sadrsah Pravahah)' 이라고도 한다.

사고의 원심적 수련, 의식의 확장, 대상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과 하나가 되어
무념, 무상, 무심의 상태로 들어가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상통하게 된다.
정려는 응념되고 있는 대상에 의식작용이 한결같다.
정려의 대상은 응념의 대상과 같지만, 그 심리상태는 응념과 정반대이다.

대상에 대한 의식의 작용이 확대되어 가는 생각의 흐름이다.
구심적인 응념에 반대되는 원심적인 사고의 흐름이다.
요가의 목표는 삼매를 통해 얻어지는 참된 지혜이다.
요가명상의 특징은 기초단계의 접근이 지식을 넓히거나 감성을 발달시키는 것이
아니고, 심작용을 억제하는 심리 현상이다.

'디야나(Dhyana)'는 아무런 대상도 없는 '무'의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완전한 명상이다.
바로 전단계인 다라나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상, 이미지, 챠크라와 중심부에
관한 집중에 대해 논한 바 있다.
다라나(Dharana)의 지속적인 수련으로 인해 수행자는 마음을 고요하고
침잠시킴으로써 진정한 명상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한 곳에 마음을 고정시켰을 때 마음은 자신의 의식을 잃어버리고 고요해진다.
척추 내의 에너지 흐름이 느껴지고, 사고 또는 내부 대화에 의해
방해를 받지 않는 고요함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라나(Dharana)에서는 챠크라에 차례로 정신을 집중시킨다.

그러나 드야나(Dhyana)에서 명상을 하면 챠크라의 의식이 사라진다.
다라나에서는 가끔식 마음의 번민이 발생한다.
챠크라의 시각화까지도 마음의 번민을 유도한다.
그러나 드야나에서는 이 시각화마저도 멈추어 진다.
마음에 고요함이 깃들고 사고의 공허함이 감돈다.
행복이 시작이 경험되는 곳도 바로 이 속이다.
이 의식은 이제 깊은 수면과 꿈, 깨어있는 일반적 상태를 초월한 제 4의 상태로 들어간다.

이것을 가리켜 현대 정신의약 용어로는 '의식의 변형상태' 라고 부르며
요기들 사이에서는 '투리야(Turiya)라고 불리운다

다라나의 결실은 드야나이며, 드야나의 결실은 '사마디'이다



8단계 : 삼매법(Samadhi)

해달, 깨달음의 상태, 최대지혜, 평온, 만족의 상태로 완전한 자유이며,
인간의 의지가 아닌 저절로 얻어 지는 경지
즉, 사물의 본질을 그대로 보는 유종삼매와
그 대상도 의식도 없는 무종삼매에 이르러 해탈한다.
삼매는 정려의 대상만 마음속에 빛나고 그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객체만 있고 주체는 사라진 상태인데, 이것은 자기마음에 대상이 주는
사실성만 가득 차 있다는 뜻이다. 
무의식상태가 아니라,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이 하나의 하나로 묶여 있는 합일상태가 삼매이다.

'사마디(Samadhi)' 라고 하는 말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말,
                                    '삼(Sam : 동등, 균형, 완전)'
                                    '아(a : 영원)'
                                    '디(dhi : 깨달음, 인식, 지식)'
의 복합어이다.
인간이 완전한 평형상태에 도달할 때 거기에 사마디(Samadhi)가 있다.

'요가수트라' 제3장 3절
     그 선정이 한결 같은 상태에 있어서, 그 대상 만이 빛나고,
     자기 자신은 없어진 것과 같이 되었을 때,
     그것이 바로 삼매(Samadhi) 이다.

                        5절에서는
     그것을 수득함으로써 예지는 빛난다
고 한 것처럼 삼매는 빛나는 예지이다.
진아가 나타나는 것인 이 상태에서다.

개인 의식으로서의 사마디(Samadhi)는 시간과 공간,
자아의 인식으로부터 벗어난 자아실현, 즉 신아합일의 상태이다.

이상의 3단계에서는 요가를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인도한다.
요가는 신을 천상에서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이 자기 속에 존재함을,
즉 안타라트마(ANTARATMA-자신 속에 존재하는 지고의 영혼)
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의 3단계가
'일체적구도 안타라트마 사마나(ANTARATMA SADHANA)라고 하는
불성 개발의 수행법인 것이다.

2017년 2월 13일 월요일

락센의 채널 정보 - 제5의 종족과 쿤달리니(kundalini) - 3부




앞으로 지구행성의 전 인류가 차원 유입의 광자에너지 연결 융합과 함께 쿤달리니의 페스티발이 도래하는 시점에 진입하였다. 그리하여 에너지 간섭파에 따라 거대한 에너지 물결이 일렁이며 기수련이나 집중명상의 노력 없이도 많은 이들이 쿤달리니 각성의 과정을 겪게 될 것이다.
 
5차원에너지와 쿤달리니의 각성은 현 지구 인류의 매우 중요한 과제의 현재진행이며 이는 미래문명의 제 5의 종족을 재탄생 시키는 대변환 연대기의 시대적 과업이다. 여기서 5차원에너지로 모든 유전인자 세포가 재배열되는 과정 속에 들어간 인류유형을 우선 신조어를 개발하여 이해력을 돕기 위해, 인종분류 연구학에 있어 제 5종족으로 잠시 명명하여 부르기로 했다.
 


문명이 바뀜에 따라 그 시공에 존속하는 생명체의 종도 변이된다. 문명은 우주진화의 거대한 에너지 물결의 발현이다. 현재 지구행성은 행성적 쿤달리니 각성의 도전에 전 인류가 진입하였다. 이 과정의 시기를 통해 유전적 변이가 일어나게 되고, 합성체나 변성종의 체가 탄생되는 생명체나 또는 다자란 성인체에 또 다른 유전적 변성인자가 재생 또는 유입출몰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 따라 부각되는 이론이 엔그렘(engram) 이론이다.
 
엔그램(engram)이론은 지구 대기권 전리층 고수위장에서 차원연결 파동영역에 따라 홀로그램 다중우주 속에 감추어진 광자에너지의 폭포수와 함께, 솔라 커넥션에 따른 태양에너지의 유출광폭 증가와 지구 와동혈의 자체포화 분출에너지에 따라 각 생명체간의 개인 쿤달리니 각성 프로그램이 재시도 되는 과정을 단순하게 정의한 이론이다.


엔그램 이론은 인간종족들의 유전자재배열에 따라 기억의 흔적들이 개별적 홀로그램 형판과 함께 재배치되며 수정되어지고 폭파 소멸의 제로 포인트의 시공간장을 개인별로 프로그램 설정을 치루는 과정이론이다. 현재 지구인류는, 그리고 타행성 종족 인류는 엔그램 이론의 변형을 함께 겪는 도전에 도래했다. 우리 모두는 각 태양계에 속한 그룹별 생명종족 인류들이다.
 
엔그램이론은 제 5종족과 또다른 문명권의 안착 직전의 과정을 재배열하는 방정식이다. 기억의 흔적을 관장하는 엔그램이론은 기억을 조작당하고 있는 모든 지성생명체에게 당면한 봉착사안인 것이다. 세포의 기억, 그리고 기억의 흔적들....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이 기억이라고 하는 동시다발로 묶여져 파급되는 시공을 넘나드는 에너지 줄기를 재생복원 해야만 할 것이다.
 
초현실 에너지파동 영역대를 재개발하고, 불균형을 이루는 어긋난 파동대를 재배치시키는 것은 각 개인의 자아탐구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야만 하는, 자신의 유일한 유전인자가 갖고 있는 정보를 알아야만 이루어낼 수 있는 스스로의 획기적 영적자각의 행보인 것이다.
 


앞으로 신과학은 시대흐름의 인류 고차원 의식체들의 앞선 발걸음에 발맞추어 영적과학으로 (science of the soul) 일반인에게 보편화되어 교육프로그램 되는, 알기 쉽고 한 걸음 다가서는 사회시스템으로 자리매김 해야 할 것이다.
 
우주적 의식으로 배치된 나선형의 우주혼의 신성한 계획(Divine Plan)에 따라 육과 영적으로 개화의 축제 페스티발을 펼치고 있는 지구행성 인류들에게 무한한 감사와 행복을 보내는 바이며, 행성들 간의 힘찬 승리의 행보를 위해 협력자로서의 소임에 충실하고 있다. 더불어 많은 차원간의 조력자들이 함께 하고 있음에 서로의 소통과 가능성들에 수월함을 갖고 희망적으로 이 일을 수행한다.
 


- 다차원의 협력과 행복과 평화를 기원하며.. – ()


 



락센의 채널 정보 - 제5의 종족과 쿤달리니(kundalini) - 2부




5종족으로의 대변환과정을 이루는 쿤달리니 각성 프로그램을 미시적인 개인의 관점에서 논해보고자한다. 나(락센)는 여기서 각 쿤달리니 센터의 변형 프로그램과정을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하려 한다. 생명인체의 해부학적 구도에 의해 3단계로 나누어 태양신경총 아래를 1단계 하단구역, 태양신경총을 위로하여 목 부분까지의 비슛디를 2단계 중단구역, 비슛디를 위로하여 인중과 양미간, 송과선의 백회를 3단계 상단구역으로 구분하여 이해를 도우려한다.
 
1단계 하단구역에 속한 인체 코어센터에서 활성화를 이루는 쿤달리니  기에너지는 척추 기저부의 뿌리중심에서 열리고 각성되지만, 또한 그에 따른 부작용으로는 안정성을 지탱해 온 안일의 확신이 흔들리게 되면 집착과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그에 해당하는 에고의식에 집중함에 따라서 강력한 에고의 힘(Down pouring egoic force)이 발현되어 성향과 현실장에 혼돈을 초래하기도 한다.


만일 충동의 통제력이 불충분하게 되면 표면적으로는 물라다라 차크라의 성적인 생존본능충동으로 무차별적인 충동성정을 발산하게도 된다. 이는 마치 술 취한 하마와 같아서 바른 지도교사의 선도가 없는 가운데 자력성을 잃거나 폭압되었을 시에는 육체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게 되는 여러 증상들을 불러오게 된다. 정신병리학적으로는 조울증, 틱장애, 성도착증, 정신분열증의 정서적 장애를 일으키며, 극도의 두려움이 내재되어 공격적 성향으로 전환되면 음울하고도 파괴적인 타마스적 기운과 라자스적인 기운을 반복적으로 일으키는 위험부담을 안게 된다.
 
1단계 하단구역의 쿤달리니의 각성과정은 매우 원초적인 근원의 뿌리를 좌우하기에 이 단계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며 신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 1단계 에너지 활성화의 폭압으로 와전된 지구역사 인류의 봉착문제점이 바로 인류들의 전쟁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연대별 전쟁들은 1단계 영역 쿤달리니의 활성화과정의 억압 농축된 포화상태의 대  폭발적 파괴성향의 와전에 지나지 않는다. 현 지구사회시스템에서 만연되어지고 있는 범죄와 상해사건들은 각 개인별의 1단계 쿤달리니 과정의 활성상태가 빗나간 비 건설적인 에너지 분출의 불발적 결과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중요한 1단계 하단구역의 쿤달리니 각성과정을 사회곳곳의 바른 대안교육과 전인격을 수월히 다루는 지도교사, 그리고 본인의 자발적인 내적 완숙을 위한 건강한 노력이 함께 상응되어진다면 뿌리의 중심축이 공고히 다져져서 그 다음의 과정을 건강한 자기 확신과 순수한 믿음으로 정신 육체적으로 기초를 튼튼하게 하는 기초공사 될 것이다. 1단계가 완전히 열리고 각성되면 분노와 속박감과 억압된 위축감이 용기와 자발실행력으로 변환되고 자신감 있는 행동력으로 인해 생활과 정서의 기복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되는 힘을 얻게 된다.
 
그 다음으로 2단계 중단구역의 쿤달리니 각성과정을 거치게 되면 심장과 폐에 위치한 혈맥들이 활성화되어 아나하타 차크라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성이 발현되며 폐활량의 증폭과 압축으로 인해 그동안 자제되었던 언어의 표현욕구가 샘솟게 된다. 이로 인해 타인으로 향하는 마음 씀이 지향되며 열정과 호기심, 드러나지 않았던 말이나 행위를 표출하고픈 강렬한 충동이 생김에 따라서 각 차크라에 해당되는 에고작용과 마음의 불확실성의 작용들로 인해 다양한 심상의 발현이 현실장의 관계성속에서 일어난다.
 
아나하타의 작용의 활성화에 의해 다양한 패턴의 사랑의 감성을 주고받기도 하며, 상처와 고통 등에 매우 민감한 체질로 변환되어 육체적으로는 협심증 또는 폐와 관련된 아토피성 질환이나 알레르기 비염, 심장발작현상이 일어나기도 한다.
 
정신병리로는 모라토리엄 현상(정신퇴행현상), 다중인격 장애, 해리현상 등 자신의 숨겨져 왔던 마음작용의 퍼스낼리티에 의해 잠재되어져 왔던 육체정신적인 현상들이 표면적 신호로 드러나게 된다.
 



*** 3부에 다시


락센의 채널 정보 - 제5의 종족과 쿤달리니(kundalini) - 1부



지구역사를 고증해 볼 때 각 시대별로 쿤달리니 현상은 우주활성화의 흐름 연대기를 타고 거대하게 몰아닥치는 해일처럼 있어 왔다. 우주시공의 격자 홀로그램 플라즈마의 교체기가 파괴와 재생을 통해 과도기적변형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공간장의 엔트로피의 에너지 가감에 따라 변용을 맞이하게 된 그 연대기의 해당 공간장에는 가시적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스파크현상이 일어나고 오르곤 에너지들의 융합과 분산에 따른 공기대기층의 에너지장 유입물들이 다채롭게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공간장의 포톤입자들의 스파크 간섭무늬가 일어남에 따라 지구와 동혈들의 맥을 중심으로 거대하게 분출 방사되어지는 불확정성의 에너지 유입과 증폭이 활성화되는 주기적 연대기를 말하는 것이다.

생명을 가진 인간종족에게 있어서 쿤달리니는 가장 저차원의 핵센터를 중심으로 최고의 차원 센터까지 회오리치는 대폭발 빅뱅의 기운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인간 생명체에게 일어나는 쿤달리니 현상은 회음 미저골을 기점으로 하여 두뇌 송과선의 와동혈을 따라 오르는 동안 오래토록 잠들어있던 두뇌의 각성을 일깨우는 육체로부터 에텔체 아스트랄체 멘탈체의 대정화 작업에 착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쿤달리니의 오르내림은 한번에 끝나는 것이 아닌 각각의 인체의 유전 프로그램 설정에 따라 몇 번이고 그 작업의 횟수가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일어난다고 보아야 한다.

여기서 쿤달리니 현상과 차원에너지 유입간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그러한 변형을 이루는, 또는 이루고 있는 인간생명체를 제5종족이라 우선 칭하여 설명하려 한다.

자명종처럼 각 생명장의 설정 프로그램에 따라 그 현상이 출두되는 시기는 예측불허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기수련이나 타인에 의한 우주기운의 전수로 인한 쿤달리니의 일깨움보다는 원칙적으로는 그 인간 생명체의 자동모드의 설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원시암묵적인 세포정열의 진행속도에 맞게 일어나야만 그 고유성에 합당한 유전자 재배열을 순탄히 마칠 수가 있다.
 
타의에 의해서 건드려진 쿤달리니 현상은 다시 어느 한 코어센터를 통과할 때 중도에서 퇴행현상을 보이거나 기혈의 불시적인 과부화로 막혀서 생겨나는 이상 작용의 부담위험성을 야기시킬 수가 있어 인위적인 강제작동은 큰 부작용을 낳는다.

그럼 이쯤에서 이 쿤달리니 현상 프로그램을 거시적인 행성적 관점에서 논해보기로 하자.
지구행성의 곳곳에 분포되어있는 와동분화구에서도 오랜 역사 속에서 잠들어 있던 핵 분화구들의 에너지적 대폭발과 함께 그 주변을 기점으로 하여, 인류기원으로부터 시원 되어져 내려 온 대변혁의 프라나가 공간 에너지장을 대 조정작업에 들어가는 임무를 부여받게 되는 것을 기상과학으로도 알 수가 있다.
 
쿤달리니라는 것은 비단 인간 종에게만 작용되는 것이 아닌 행성별들 간에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큰 호흡의 재채기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고 비유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전폭적으로 지원되어질 5차원의 에너지라는 것에 대하여 검토해 보아야 한다.
 
5차원으로의 에너지적 유입은 3차원의 고형적 물현상이 4차원의 몰로그래피적 반플라즈마 과정을 지나
우주 차원간의 파동영역대들을 무작위 격자로 파괴시키는 홀로그램적인 에너지 클리너의 대변형작용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즉 다시 말하면 우주심의 자유의지(Free will )의 선택에 따라 인간계(The humen Kingdom)에너지적 몸체가 태양계의 몸(Solar bady)으로 변환되어지는 우주보편의 중심원리에 한발자국 다가섬에 임박했음을 일컫는 예시인 것이다. 여기서 나는 우선 이해를 돕기 위해 그러한 과정이 안착되어진 종을 제5종족이라 칭하여 말하기로 할 것이다.
 
3차원의 유전형질에서 5차원의 유전인자 형질로의 변형을 일으키는 에너지체는 우주 나선형의 기본흐름의 원리에 따라서 인체작동의 진동파가 새로운 음(A new note)으로 변형되어지는 작업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로 말미암아 현 지구시스템의 변혁연대기에 접어든 , 이 순간에도 나선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5차원으로의 진입과 쿤달리니의 상관관계는 매우 밀접한 사안이라 신중히 암중모색되어져야 할 중대한 지구 인류적 과제인 것이다.

현재 이 행성지구에서 3차원으로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쿤달리니의 각성의 과정을 거쳐 무사히 안착되는 대대적인 프로그램은 현 지구인류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인 동시에 지구의 대축제가 될 것이기에…….!
 
인체의 각 코어센터에서 고여 있던 에너지가 활성화되면 심령적인 힘(Psychic Powers)이 깨어나면서 때론 커다란 위험이 이 과정에서 따르게 되나, 엄연히 그 누구나가 치러야 할 개개의 할당된 몫이기에바른 정보와 지식에 따라 무사히 통과하게 되면 초의식이 깨어나는 체험과 함께 본연의 실체를 바로 알 수 있는 인식의 대변환을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개인 당사자간의 심상화적인 마음의 질료에 따라서 에고와 인격이 파괴되고 재생되는 가운데 상위자아와 합일을 이루어 우주의식의 한 패턴과도 일치되는 고차적 진화인으로서의 개별적 영혼의 상(Soul aspec)이 부활 창조되는 재생합성인류로의 전환이다.
 

*** 2부에서 다시


2017년 2월 7일 화요일

쿤달리니 - 예수님이 전해주는 쿤다리니 에너지 이해하기

예수님이 전해주는 쿤달리니 에너지 이해하기
채널러: 킴 마이클즈(Kim Michaels)
채널시기: 2004년도
 
모든 영성 추구자들에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쿤달리니(Kundalini) 에너지 주제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정말로 나는 쿤달리니 에너지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을 오직 내 제자들에게만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다수의 사람들이 가르침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인도로 여행 중에 쿤달리니에 대해서 배웠고, 쿤달리니를 각성시킬 목적으로 얼마간의 요가의 형태들을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기법들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내가 깨달았고, 따라서 내 제자들과는 다르게, 그들에게는 내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쿤달리니"라는 용어는 당신들이 살아 있도록 유지하는 영적 에너지의 흐름을 단순히 다른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대중들에게 이 에너지에 대해서 말했고, 그리고 당신들은 신약에서 그것에 대한 힌트를 역시 찾을 수 있을 것니다. 나는 "생명수(water of life)" 또는 "생수(living water)"로서 그것을 보통은 바이블에 언급했습니다. 이 에너지는 성령(Holy Spirit)의 한 측면입니다. 성령이 당신들이 성장하고 제약들을 초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기억할 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쿤달리니 에너지의 본질과 사람에게 그것이 갖는 효과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역주)
요한복음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한복음 4: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요한복음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He that believeth on me, as the scripture hath said, out of his belly shall flow rivers of living water.)
요한계시 22:1)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요한계시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쿤달리니 에너지에 대해서 당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당신들에게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영적인 정의는 성장하고 있고 그리고 자기를 초월하고 있는 무언가입니다. 따라서, 생명 에너지, 쿤달리니 에너지, 생명수(living water of life)는 끊임없이 흐르는 것이고, 당신이 모든 경계들과 제약들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합니다. "나는 현존한다(I AM Presence)"에 맞추고 있는 인간에 대한 자연적인 상태는 생명의 강(River of Life)과 함께 흐르기 위한 것이고, 그리고 그의/그녀의 자기인식(self-awareness)과 정체성에 대한 감각(sense of identity)을 끊임없이 초월하기 위한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행성 지구상에서의 중추적인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에너지 장을 통과하는 쿤달리니 에너지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정지시켜 버리게 하는 다양한 마음상태들을 세워 왔다고 말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신의 조건 없는 사랑의 흐름에 대한 하나의 도관(conduit)으로서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이 사랑의 흐름속에 있을 때는, 당신을 통하는 사랑의 흐름을 정지시켜 버리도록 하는 어떠한 조건들도 전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어나 왔던 것은 그들이 마음속에서 각종 조건들을 세워 왔고, 그것으로 인해 이 상황 또는 그 상황에서 그들이 말합니다. 그들을 통해서 조건 없는 사랑이 흐르도록 허용할 수 없다고 말입니다. 그들은 그 환경들에서는 사랑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흐름이 그 자체로 바로 생명력이기 때문에, 그것이 흐르도록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당신들은 오로지 강제로 그것을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들과 에너지 장들을 통해서 생명의 흐름을 정지시키기 위해 정신적 그리고 감정적 힘을 사용해 왔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들이 생명의 흐름, 즉 쿤달리니 에너지를 강제로 제한하는데 익숙해져 왔습니다.
특히 많은 영성 추구자들이 쿤달리니 에너지를 강제로 높이기 위해서 고안된 각종 기법들을 사용하는데 매료되어 왔다는 것을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그런 기법들이 특히 동양에서 전해져 왔고, 그 기법들이 수천년간 사용되어 왔습니다. 이 기법들의 얼마간은 타당하지만, 오로지 경험 많은 구루(선생)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제자들에게 가르쳤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보호된 환경과 구루의 끊임없는 감독하에서 학생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균형된 성장을 만들어 내도록 고안된 많은 정당한 기법들이 아니라, 쿤달리니를 강행해서 일으키는 기법들에 대해서 내가 말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불행히도, 배우고자 하는 어떤 이에게 -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비용을 지불하고- 인도에서 왔고 이 기법들의 얼마간을 가르쳐 왔다고 스스로 주장하는 일련의 구루들을 우리는 보아 왔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강제로 천상을 취하고자 시도하게 교묘히 몰고 가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이블에서 내가 언급했던 말의 한 구절입니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마태 11:12)
잠시 본질적인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쿤달리니 에너지가 당신 존재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할 것입니다 - 당신은 그것을 강제로 흐르게 하기 위한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됩니다. 그 흐름이 정지되었다면, 그것은 강제로 정지되었습니다. 당신이 잠재의식과 에너지 장 속에, 구체적으로 차크라라고 부르는 일곱개의 주요 에너지 센터들 속에, 그 막힘들을 만들어 왔고, 그리고 이 막힘들이 그 생명의 흐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쿤달리니를 차크라들을 통해서 강제로 상승시키기 위한 기법을 사용하는 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 실제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불을 가지고 불을 끄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에너지의 자연적인 흐름을 막도록 한 힘이었습니다. 따라서 논리적인 대답은 그 에너지 흐름을 제한하는 막힘들을 제거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그것이 또다시 자연스럽게 흐를 수 있습니다. 강제적으로 그 흐름을 다시 만드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고, 그 이유를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아야 합니다.
순수한 한 인간 안에, 생명의 강이 자유롭게 흐르는 곳에서, 쿤달리니 에너지가 심장 차크라로 들어가고 나서, 척추의 베이스(base)에 위치한 차크라 안으로 흐릅니다. 그것은 그리고 나서 머리 위 크라운 차크라로 도달할 때까지 모든 일곱개의 차크라들을 통과해서 흐릅니다. 이 흐름이 유지될 때, 그 사람은 완벽한 균형속에 있고 최상의 형태로 그리스도 의식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 상태 속에서, 모든 차크라들이 균형되고 정렬이 되고, 그리고 그것들이 같은 방향으로 회전을 합니다.
당신이 차크라들을 통해 흐르는 빛의 흐름을 강제로 차단하거나 제한할 때, 그것들은 부정적인 에너지의 축적들에 의해서 오염이 되게 됩니다. 이것으로 인해 급속히 차크라들이 서로 다른 속도로 돌기 시작하는 원인이 됩니다. 따라서 차크라들이 더 이상 조정이 되어진 상태 속에 있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한층 더해 차크라들의 일부가 막히게 되고, 그 차크라들은 어떠한 빛도 그것을 통해서 흘러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또는 그로 인해서 차크라들을 정상적인 방향에서 반대로 돌도록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사람은 극렬한 동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에서 돌고 있는 베이스 차크라(base chakras)들을 갖고 있는데, 이로 인해서 그들이 성에 대해서 탐욕스런 욕망을 갖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돌고 있는 태양총 차크라(solar plexus chakra)를 갖고 있고, 이것이 그들로 하여금 항상 안절부절 못하게 하고, 많은 상황에 성급함과 화냄으로 반응하게 합니다.
불균형적인 사람이 이 기법을 사용해서 불균형이 되고 막힌 차크라들을 통해서 쿤달리니 에너지를 강제로 각성시킨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쿤달리니는 성령(Holy Spirit)의 한 측면이고, 그리고 그것은 당신이 제약사항들을 초월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고안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쿤달리니가 건드리는 어떤 것도 증폭시키게 됩니다. 당신이 쿤달리니를 차크라들을 통해서 강제로 흐르게 할 때, 그것이 당신 차크라들속에서 있는 모든 결함들과 불균형들을 분출시키고 증폭시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격렬할 수 있는 생각들과 감정들의 형태에서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불균형적인 많은 사람들이 쿤달리니에 강제로 가하기 위한 방법들만 사용해 왔습니다 - 빛의 흐름을 신경계와 에너지 장이 단순히 처리할 수 없었던 것을 찾기만 하는 것으로. 그것은 110 V로 맞추어 설계되어진 전기기기에 220 V의 전압을 내보내는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명백히, 그 기기는 타게 될 것이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그들의 신경계의 일부가 타버리게 되었고 에너지 장들이 깨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각종 형태의 감정적인 혼돈상태로 이끌게 되거나, 한층 더해서 정신 이상과 광기로조차 이끌게 될 것입니다. 이것에 준비가 되기 전에 당신들이 쿤달리니 에너지를 강제로 올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충분한 만큼이나, 나는 단순히 강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준비가 되기 위한 열쇠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당신이 아주 높은 정도의 균형과 조화가 될 때까지 차크라와 에너지 장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균형과 조화가 진정으로 성공적인 영적 성장을 위한 열쇠입니다. 이 두 가지 특질들이 오직 무 집착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고, 당신이 진정으로 집착이 없게 될 때, 당신은 강제로 천상을 취하도록 시도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 그리고 영적인 성장에서의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가장 큰 문제점들 중의 하나는 서구 문화가 전형적으로 결과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수십년간 이것으로 인해 순간적인 희열을 쫒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오로지 광신적 추종(cult)으로 이끌어져 왔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이 문화속에서 자라 왔고 영적 성장에 대한 필요를 실감할 때, 그들은 종종 순간적이고 즉시 일어나는 결과들- 종종 그 같은 결과들을 위한 기초를 점진적으로 세우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하지도 않으면서- 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외형적인 현상, 깊은 영적 체험, 영적 성장의 긍정적인 장점들을 단순히 원합니다. 이 결과들을 얻기 위한 과정을 겪지 않고서 말입니다. 이것으로 인해 서구의 많은 영성 추구자들로 하여금 어떤 종류의 감각 또는 현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기법들을 찾아 나서도록 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쿤달리니를 강제로 고양시키는 기법들을 사용하는 쪽으로 유혹 받아 왔습니다. 이것이 진정으로 행해질 수 있고, 그리고 그것은 아주 극적인 효과 - 하지만 종종 내가 단지 설명했던 그 결과들과 함께 -를 가질 수 있습니다.
쿤달리니 에너지를 높이기 위한 올바른 방향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먼저 신의 왕국, 그의 정당함을 찾는 것이고, 그곳으로 부터 다른 모든 것들이 당신들에게 추가되어야만 합니다. 신의 왕국은 그리스도 의식(Christ consciouness)이고, 그리고 "정당함(righteousness)"은 에너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균형되고 조화로운 에너지 흐름을 당신 존재를 통해서 말입니다.
내가 말했듯이, 쿤달리니 에너지의 본질은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그 흐름을 봉쇄했기 때문에, 당신을 통해서 흐르는 것이 다만 멈추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당신이 그리스도 의식을 위해 노력한다면, 그리고 논리적인 결과로서 당신의 심리적 그리고 에너지적인 장에서의 모든 막힘들과 불균형들을 제거하도록 노력한다면, 당신은 당신 존재를 통해서 그 에너지 흐름을 점진적으로 개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에 의하여, 생명의 강이 당신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흐르기 시작할 것이고, 하지만 이것은 불균형된 방식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균형된 방식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고, 그리고 당신이 그것에 대해서 준비가 될 때까지는 쿤달리니 각성을 경험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상, 당신이 진정으로 균형된 방식에서 이것을 착수한다면, 당신은 강렬한 영적 체험들의 극렬한 분출과 함께 동등하게 따라오는 깊은 침체 대신에, 안정되고 균형된 성장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불균형된 많은 사람들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의 극심한 흔들림들을 정말로 경험해 왔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붓다의 균형이 잡힌 경로, 중간 길이 단순히 아닙니다.
따라서 내 요지는, 영성 추구자들이 일부러 강제로 쿤달리니 에너지를 높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데 대해서, 나는 지지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기법들을 사용해서 쿤달리니를 강제적으로 올리는 것을 옹호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당신들이 어떤 기법들을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당신들은 우리가 도구 박스(toolbox) 웹사이트(역주: 아래 역주 참고)에서 주어진 모든 기법들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체계를 통해서 자유롭게 흐르는 쿤달리니 에너지를 막는 에너지장 속의 막힘들을 체계적으로 제거하도록 마더 마리의 로사리오 기도(묵주신공, rosaries)와 기원문(Invocation)들이 구체적으로 고안되었습니다. 일곱 광선들에 대한 디크리들(decrees)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들이 이 도구들을 사용함으로써, 당신을 통한 생명의 흐름을 당신이 점진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섬세한 신경계를 손상시키거나 에너지 장의 구멍들을 만들지 않는 균형되고 조화로운 방식에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대신에, 그리스도 자아(Christ self)의 신랑을 기다리면서, 장식이 달린 램프를 들고 있고, 차크라들이 균형 속에서 유지되고 있는 현명한 신부와 같이, 당신은 진정으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역주)
마더마리 묵주기도와 기원문:
일곱광선 디크리:
역주) [바이블의 열 처녀 비유]
1.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2. 그 중의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 자라
3.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4.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
5.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새
6.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
7.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새
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9.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
10. 그들이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오므로 준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11.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12.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
참고) 관상기도:
Contemplation(관상기도)는 카톨릭에서 사용하는 독자적인 기도체계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사용하지 않았었지요. 근래에는 개신교에서도 이 관상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상기도에 대해서 비성격적이라는 비판이 개신교쪽에서 거세지고 있는 듯 합니다. 관상기도에 대해 주장되고 있는 비판에는 "Centering Prayer(향심기도)"에 대한 비판을 함께 보아야 합니다. 향심기도는 요가나 명상등을 블랜딩하는 서구의 기독교인들을 다시 기독교로 되돌리기 위한 기독교적인 명상법이라 하겠습니다..
이 향심기도가 관상기도의 일맥이라고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향심기도는 천주교와 개신교 모두에서 뉴에이지 명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향심기도는 '거짓나'를 없애고 인간 개개인의 마음속에 깃든 '신성'을 체험하는 기도입니다. 힌두교의 명상법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하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