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에너지가 작용하는 법 - 진짜 생각은 오로지 내가 선택한 것 뿐, 나머지는 내 것이 아님을 선언하면 됩니다.

이제 에너지가 어떻게 작용하는 지를 이야기해봅시다.
이건 의식이 펼치는 연기를 이해하는 데 몹시 중요한 부분이니까요.
모든 것은 의식으로 시작됩니다.
원으로 둘러싸인 점(Circumpunct).
이것은 의식, 그러니까 당신의 의식을 뜻하는 고대의 상징입니다.
또한 영혼을 뜻하기도 하죠.
당신의 신성은 순수한 의식이니까요.

가운데 점은 '존재했던 모든 것' 또는 '근원'이나 '신'이라고 알려진 당신의 기원을 나타냅니다.
외부의 원은 당신의 영혼이 거쳐온 모든 경험이죠.
 
 
당신이 경험을 하고 영혼이 그 경험을 정제하면 그 정수는 지혜가 되어 다시 영혼으로 돌아갑니다.
그리하여 신성한 '원'으로 둘러싸인 '점'이 지혜를 뜻하는 '모든 것을 지켜보는 눈'으로,

지금 이 순간 당신 안에 있는 '앎'이 되어 나타납니다.
 
 
 
 
당신의 깨어남을 불러올 지혜와 앎이죠. 느껴보세요.
그러면 마스터, 에너지, 깨달음의 정수를 얻게 되실 겁니다.
내면의 앎을 따라가 보세요.
그것은 전에 본 적 없이 위대한 안내의 빛입니다.

'원으로 둘러싸인 점'으로 상징되는 의식에는 에너지가 담겨 있지 않습니다. 에너지가 전혀 없죠.
그렇다면 에너지는 어디서 생겨났을까요?

의식에 에너지가 없다면, 영(Spirit)이 에너지가 아니라면,
대체 에너지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에너지는 열정에서 왔습니다.
"나는 누구지?"라는 최초의 질문이 떠오른 순간, 영혼의 어마어마한 열정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죠.
"나는 존재한다!"라고 느끼는 열정에서 태어난 겁니다.
처음에는 에너지란 게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의식만 존재했죠.

의식은 내면에서 솟아나는 열정, 존재하고자 하는 열정, 아이엠을 알고자 하는 열정, 자기 자신을 경험하고자 하는 열정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의식의 열정은 너무나 강렬하고 격렬해서 어느 막다른 지점에서 압축되고 농축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너지를 창조했죠.

의식의 정점에서 영혼은 그런 열망과 긴장을 창조해냈고, 그로 인해 의식이 에너지로 압축되고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의식이 에너지로 변형된 최초의 사건이었죠.
실로 아름답고 놀라운 일이었어요.
에너지는 엉키고 압축된 의식입니다.

당신이 자신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위해 창조한 것이죠.
그것은 눈부셨고 "아이 엠! 나는 존재한다!" 라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단 한 번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 최초의 표현이 모든 에너지를, 지금껏 당신의 경험을 창조하는 데 도구나 수단이 되어준 그 모든 에너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에너지는 훌륭했습니다.
영혼을 순수한 상태로 그냥 두었죠. 어떤 면에서 에너지는 의식을 오염시키지 않으려고 언제나 의식 바깥으로 나갔습니다.

그 무엇도 당신의 영혼을 일그러뜨리거나 더럽히거나 손상시킬 수 없으니까요.
당신은 빛 중에서 가장 밝은 빛과 어둠 중 가장 깊은 어둠까지 그 장대한 경험을 하면서도 여전히 순수한 의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심오한 진실이 제 눈가를 촉촉이 적시네요.
에너지를 창조할 정도로 깊은 열정이 있다면 영혼은 결코 오염될 수 없습니다. 온전히 아름답죠.

의식의 열정이 오늘 이 순간 당신이 활용하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창조한 것입니다.
열정이 에너지를 창조했다는 사실을 유념하면서 이제 에너지의 다른 수준과 층위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당신은 영혼을 지닌 존재입니다.
의식을 지닌 존재, 에너지에 둘러싸인 존재죠.
기본적으로 네 가지 수준의 에너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 ㅡ 중심 에너지(Core Energy)
첫 번째는 당신에게 제일 가까운 '중심 에너지'라는 것입니다.
언제나 동일한 양으로 당신만의 에너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빼앗기거나 무엇으로도 손상될 수 없죠.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의 중심 에너지, 개인적인 에너지이며 결코 다른 누군가의 에너지와 뒤섞일 수 없습니다.
중심 에너지는 너무 가까워 제대로 인지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거기 있죠.
부피도 색도 없이 완벽하게 투명하고 순수하며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다른 누군가에 줄 수도 없고 무엇으로도 오염되지 않아요.
이 중심 에너지는 완벽하게 당신의 것이며 신성한 열정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습니다.
두 번째 ㅡ 크리스탈 에너지 (Crystal Energy)
다음은 '크리스탈 에너지'라 불리는 것입니다. 크리스탈 에너지는 당신이 다른 영혼 존재를 만나던 그 순간 생겨났습니다.
당신 자신을, 당신의 자각을 그들에게 가져온 순간이죠. 영혼을 지닌 존재들이 어우러지고 한데 모여 '크리스탈 에너지'를 창조해냈습니다.
정말로 순수하지만 둘 이상 혹은 그 이상 의식을 지닌 존재가 모여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 에너지는 또한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매우 아름답고 정제되어 있지만 오직 자신만의 에너지가 아니기 때문에 중심 에너지만큼 순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크리스탈 에너지는 특히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작업할 때 활용하기 좋은 에너지입니다.
치료사나 상담가라면, 단체 프로젝트를 하고 있거나 누군가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면 크리스탈 에너지를 활용하세요. 공동작업에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명료함과 열정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크리스탈 에너지는 언제나 존재합니다.
지금도 당신을 가득 에워싸고 있죠. 이 에너지는 아주 강렬하며 변화무쌍합니다. 그 강도가 수시로 다양하게 변하죠.
이 크리스탈 에너지로 인해 사람들이 자꾸 반복해서 집단으로 돌아오려 하기도 합니다.
한 생애에서 전우였던 사람들이 다음 생애에선 가족으로 함께 하죠.
그 집단에 존재하는 크리스탈 에너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차츰 카르마나 다른 것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특정 집단이 창조해낸 크리스탈 에너지는 아주 오래 변치 않고 남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족 또한 고유한 형태의 크리스탈 에너지를 가지고 있죠.

세 번째 ㅡ 우주 에너지(Cosmic Energy)
그 다음은 우주에너지입니다.
우주 에너지는 물리적 현실로, 당신의 물리적 우주와 주위 차원으로 들어온 최초의 에너지죠.
이 에너지는 중심 에너지와 크리스탈 에너지에 비해 밀도가 훨씬 높습니다.
우주 에너지는 이 우주의 구성 요소입니다. 그 덕에 시간, 공간, 물질 같은 것들을 경험할 수 있죠.
우주 에너지는 이토록 밀도 높고 물리적인 '지구'라는 현실로 드나들 수가 있습니다.
크리스탈 에너지 역시 그럴 수 있지만 중심 에너지는 그럴 수 없죠.
즉, 우주 에너지와 크니스탈 에너지는 지구에서도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라는 뜻입니다.
인긴은 대게 우주에너지를 잘 활용하지 않지만 간혹 우주 근처에 있는 다른 존재들이 그 에너지를 이용합니다.
우주 에너지는 우주여행을 할 때, 또는 중력이나 다른 힘처럼 물리적인 장벽을 극복하는 데 적합하죠.
우주 에너지는 지금 이곳에서 다양한 현실을 동시에 인지하고 그 현실 안에서 움직일 때 몹시 중요합니다.
다른 현실을 경험할 때는 우주 에너지만으로도 충분하거든요. 우주 에너지는 다차원 현실을 여행하거나 경험할 때 이용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ㅡ 지구 에너지(Earth Energy)
마침내 지구 에너지에 도달했군요.
이 현실에서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죠. 물질을 비롯해 지구물리학과 과학을 창조하는 에너지입니다.
언제나 모두가 쓰고도 남아돌 만큼 풍요롭죠.
지구 에너지는 다른 에너지에 비해 몹시 조밀하고 견고한 편입니다. 그리 빠르게 움직이거나 유연하지도 않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당신과 교류하는 기본적인 에너지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에너지가 영혼의 에너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잊지 마세요.
각 단계마다 축소되고 하강하고 농축되긴 했지만 그 에너지들의 기원은 모두 하나, 당신의 열정입니다.
그리고 여기엔 몹시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열정에 관해 잠시 이야기해 봅시다.
깨달음의 과정에서 제일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열정'을 상실했다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인간적인 열정이라 여겨온 것이 진실한 열정은 아니었습니다.
열정은 강렬한 소망 그 이상이죠. 인간적인 열정은 취미, 정원가꾸기, 자원봉사, 독서 같은 활동으로 계속 바삐 움직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어느 날 문득 사라져버리죠.
당황한 당신은 묻습니다. "내 열정이 어디 있죠?"
깨어나는 사람들이 던지는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가 이겁니다.
"어떻게 내 열정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글쎄요, 아마 그런 열정은 되찾을 수는 없을 겁니다.
제법 흥미롭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일들을 사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게 진정한 열정은 아니었어요.
진정한 열정은 인간으로, 동시에 영혼으로 이 자리에 앉아 "나는 존재한다. 아이 엠."을 느끼는 겁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르죠.
"글쎄, 그건 그리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나는 무언가를 하는 열정을 원해. 아침에 눈뜰 때 나를 행복하게 해줄 무언가, 하루를 견뎌나가게 해줄 무언가를 원해. 단조롭고 지루한 일상과 달리 조금은 재미있는 것을 원한다고."
그러나 실제로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것은 중심에서 나오는 '나는 존재한다.'라는 열정입니다.

이것이 진실한 영혼의 열정이며 풍요와 창조성, 건강을 비롯해 바라는 모든 것을 가져다줄 것입니다.

가끔 풍요에 관한 수업을 열어 달라는 부탁을받습니다.
하지만 그건 정말 단순하죠.
풍요는 삶에 대한 열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풍요도 존재합니다.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몸도 적절하게 반응할 겁니다.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있다면 모든 것이 바로 당신을 위해 그 자리에 존재할 것입니다.
그러니 기억하세요.
열정이 에너지를 창조했고, 이제 그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것도 열정입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 들었어, 그런데 어디서 이 열정을 찾으란 말이야? 어떻게 그걸 내 안에서 꺼내오란 말이지?" 하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글쎄요, 그에 관해 생각한다거나 "나는 열정이 있다. 내겐 열정이 있어." 하고 읆는다고 생겨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데엔 아무런 열정도 없으니까요.
생각을 토대로 한 현실 창조 기법이 실제 별 효과가 없는 이유는 생각에 열정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은 다양한 색채나 생명력이 없고 단조로운 편이죠.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할 수 있지만 거기엔 별다른 열정이 없습니다. 그러니 에너지도 별로 없지요.

이러한 '현실 창조 기법' 이나 '긍정적 사고' 수업을 듣고 "와! 어쩜 내가 답을 찾은 것 같아." 하는 흥분 비슷한 걸 느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어느 부자가 내 돈을 가져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니까요.

" 어쩜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지 몰라." 하는 생각에 처음엔 열정 비슷한 것도 잠깐 일어날 겁니다.

그러나 약간의 효과가 있고, 몇가지 동시성이 일어나고, 그럴싸한 우연의 일치가 몇 번 일어난 뒤에는 다시 똑같이 전처럼 낡은 쳇바퀴 속으로 돌아가 버리죠.

그러면 그 강사를 비난하게 될까요?
아뇨, 자신을 비난합니다.
뭔가를 못 배웠다고, 뭔가를 모른다고 말이죠.
그리고 다시 낡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거죠.
풍요는 자신의 열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이제 핵심에 도달하게 되었네요.

당신의 열정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열정은 어디에 있나요?

당신의 열정은 어떠합니까?

아마 좀 맥이 빠져 있을 겁니다.
나쁜 건 아니지만 본래의 잠재성에 비하면 생기가 좀 없죠. 1부터 10까지 눈금자가 있다면 아마 2정도일 겁니다.
낡은 인간적 열정의 상당 부분이 당신에게 떨어져 나가고 벗겨졌습니다.
이제는 남아있는 에너지도 거의 없고 열정을 다시 불러일으키기에도 너무 버겁습니다.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앞으로 20년은, 또 깨달음까지는 어떻게 버텨낼지 의심스러워합니다.
더는 열정이란게 남아있지 않습니다. 낡고 인간적인 관점에서는요.
그러나 분명, 진정한 열정은 존재합니다.
언제나 존재해왔죠. 그것은 '아이 엠'의 열정입니다.
애써 만들 필요도, 자신을 속일 필요도, 응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깊이 호흡하면서 한 번 더 느껴보는 게 전부입니다.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언제나 여기 있었죠.
아이엠에는 엄청난 열정이 있고 그것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그 열정이 에너지를 창조했고 당신 또한 아이엠이기에 이 열정을 알아차리고 느낄 수 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햇살을 받는 것처럼 모두가 똑같은 에너지를 누릴 기회가 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받거나 덜 받지 않습니다.
부유하거나 더 많은 기회를 갖고 태어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은 다 똑같은 에너지의 잠재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이 적어도 동등한 에너지를 지니고 태어나며, 자신의 여정에서 위치한 지점에 정확히 상응하는 어너지를 얻게 됩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직 배워야 할 것, 얻어야 할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아요.
어떠한 경우에도 더 이상 당신이 얻어야 할 교훈이란 없습니다. 배워야 할 것도 없고 이미 경험하지 않은 것도 없어요.
많은 것들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지만 사실 그 모두가 연기일 뿐입니다.
당신은 같은 연기를 같은 결말로 반복하다가 또 다시 그리로 뛰어든 뒤 무언가 달라지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죠.

"이제 됐어!" 하고 선언하기 전까지는요.
모두에겐 동일한 에너지가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에게나 파산한 사람에게나 똑같은 양의 에너지가 작용합니다.
두 사람 다 같은 양의 에너지를 다루고 있지만
한 사람은 '풍요'라는 연기를 하고 있고 다른 사람은 '가난' 이라는 연기를 하는 중이죠.
누구에게 에너지가 더 많고 적은 문제가 아닙니다. 각자의 의식이 그 에너지로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누구에게나 언제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연기를 바꿔볼 수 있는 은총과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에너지를 운용하는 방식을 바꿔보세요.
대부분은 자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누군가에게서 에너지나 힘을 뺏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사실 힘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이 힘을 믿고,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지만 힘 그 자체는 단순히 환상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필요한 것을 가지려면 남들에게서 빼앗아 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단순히 자신의 의식을 바꾸고 삶의 에너지 형태나 흐름을 바꾸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죠.
신념 체계, 습관, 관행, 최면, 대중의식 같은 것에 사로잡히지만 않는다면 매우 단순한 일이죠.

사람들은 깊이 세뇌되어 있고 최면에 걸려 있습니다. 외계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건 최면이죠.
그리고 대중의식을 통해 점점 더 많은 최면을 받아들입니다.
저는 그걸 '나 말고 전부 다' 증후군이라 부르는데요. 무엇이 되었던 자신이 아닌 다른 데서 받아들인 신념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런 세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단순히 선택하고 선언하면 됩니다.
"더는 됐어!"

진짜 생각은 오로지 내가 선택한 것 뿐, 나머지는 내 것이 아님을 선언하면 됩니다. 이게 전부죠.
물론 현실에서는 마음이 이렇게 싸움을 걸어올 겁니다.

"아냐, 네 것이 맞아. 네가 생각해냈고, 순응해왔고, 아주 오랫동안 받아들이고 믿어 온 거잖아."

바로 그때 이렇게 말씀하세요.

"나는 나 자신이야. 그건 더 이상 내 생각도, 내의식도 아니야."
그리고 내려놓는 겁니다.

정말로 단순하죠.


<아다무스 세인트 저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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