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30일 월요일

RAMTHA 람타 - 람타에 관하여

며칠 전 어떤 분이 람타와 람타 가르침에 대한 질문에 대하여 저의 근기로 이해한 내용을 올렸습니다. 어떤분께서...그동안 람타 가르침에 대한 나의 이해가 많이 깊어졌는지 글이 무척 차분해졌다고 하면서...이글을 람타와 람타 가르침에 대해서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공지사항으로 올리라고 하여 올립니다.


람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지만, 놀랍게도 람타가 지금 현재 전세계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즉 많은 분들이  람타가 3만 5천년전에 이 땅에 살았다가 초달한 후 다시는 이 세상에 오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람타에 관해서 잠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람타, 이분은 3만 5천년 전에 레무리아인으로 태어났다가 초탈하신 분입니다. 그 당시 알려진 세상의 3분의 2를 점령하고 수 많은 사람들을 죽였지요. 그러다가 적에 의해 중상을 입고 오랫동안 바위 위에서 치료를 받으며 바람을 보고 관찰하다가 깨달음을 얻고...결국에는 그 당시 람타 국민들 앞에서 초탈하신 분입니다. (죽였다는 말을 일부러 강조했어요. 그런 사람도 초탈할 수 있는데 하물며..개미 한마리 죽이는 것도 제대로 못하는 나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기에...ㅋ)





30여년전에 제이지 나이트라는 여자의 몸을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 당시 깨달았던 진리와 가르침을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채널링이라는 말은 람타에 의해서 처음 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람타는 자신이 가르치는 모든 것들은 지식 철학이라고 하면서....우리가 배운 것을 실지로 경험할 수 있는 훈련을 가르치는 람타만의 독특한 가르침으로 지난 30여년동안 수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고 그들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람타 가르침의 핵심은 한국에서 번역된 The White Book 즉 '람타'라는 이름으로 번역된 책에 고스란이 녹아 있습니다만, 그 책은 겨우 시작에 불과합니다. 람타는 자신이 선정한 13명의 교사외에는 (지금도 계속 선생님들을 양성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람타의 가르침을 가르치지 못하게 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나 부처님의 신성한 가르침이 다른 사람들에 많이 왜곡된 것처럼 자신의 가르침도 왜곡되고 탁하게 될까 봐 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람타의 가르침은 모두 녹음되어 있습니다.





람타 가르침의 또 다른 특징은 다른 종교나 가르침과 달리...처음부터 끝까지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내재해있는 무궁무진한 힘과 잠재 능력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고...세상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하면서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됩니다. 네, 저는 지금까지 수 많은 강의를 듣고, 책을 보고, 많은 세미나, 종교 모임이나 영성 모임에 갔었지만....이런 모든 것들이 단지 전체의 일부만을 보여주었던 것 같습니다.




네, 저의 근기부족으로 그렇게밖에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무척 많겠지요. 하지만 람타 가르침과 The White Book 을 보고 난 후에..내 자신에게, "아, 이제 나의 방황은 영원히 끝났다. 아니 어쩌면 이 생의 방황만이 아니라 어쩌면 내 윤회의 고리가 람타의 가르침을 배우면서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람타의 가르침은 저에게 전체를..모든 것을 보여주었어요. 전체를....그리고 그 전체와 나와의 관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고...가면 갈수록..그 생각은 확고해지고...람타가 그렇게 고마울수가 없더라구요. 네, 그것은 숭배가 아니라 순수한 감사의 마음입니다.



네, 저는 변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나를 바라보는 눈도...그리고 생각하는 방식 즉 사고방식도...그리도 더 이상...흔들거림이 없어졌습니다. 불안때문에 흔들리는 것도,두려움때문에 흔들리는 것도,의심때문에, 불확신때문에 흔들리는 것도...없습니다. 뭐 그렇다고 내가 항상....잔잔한 바다는 아니랍니다.잔잔한 바다대신..(네, 잔잔한 바다, 평온한 바다..그것은 제가 지난 16년동안 명상을 하면서 이루고자 했던 것이었습니다.)오늘도 미지의 것을...새로운 경험을, 어제보다 나은 경험을 하기 위해...


나는 많은 호기심과 약간은 흥분된 마음으로...경이로운 눈빛을 하고 세상을 바라봅니다. 행복하냐구요?ㅋ 행복타령 아주 오랫동안 했는데...행복에 대해서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구요. 왜냐하면 내 존재로 들어가보니..바로 내 본질이 행복이더라구요. 행복하냐구요? 잘 모르겠어요! 나보고 사람이니? 라고 물어보는 것처럼 그 질문이 생소하네요. 대신...사람들이 나랑 같이 있으면 너무 행복하대요. 행복이 전염되는것 같다구....그리곤 알았습니다. 빛은...그 존재만으로도 세상을 밝게 비춘다는 것을...에구 수다가 너무 많아졌네요. 다음은 계속해서 람타 가르침에 대한 설명입니다.



제이지 나이트-그녀는 가정주부였다가, 30여년전 어느 날 오후 람타가 일하던 부엌에 나타나..그때부터 람타한테 우선 배우고 정식으로 채널이 되었습니다. 람타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제이지 이외에는 자신을 채널하는 사람은 없다고 수시로 주장합니다. 람타가 유명해지고 난 후 많은 사람들이 람타의 채널이나 메시지를 들었다고 주장하거든요. 채널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도 람타이며...영매와 채널이 다른 점은 채널 즉 제이지가 채널할 때 그녀는 완전히 그녀의 몸을 떠납니다. 그리고는 람타는 그녀의 두뇌 뒤에서(소뇌뒤에서) 그녀의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입니다



람타의 가르침은 4가지 초석으로 이루어집니다. 람타의 모든 가르침이나 훈련은 이 4가지 초석을 중심으로, 바탕으로 이루어지며..모든 것들이 이 4가지 초석을 이루거나 이해하기 위한 것들입니다. 
  1. 당신은 하나님이다.
  2. 의식과 에너지가 우리의 현실을 창조한다. ( Consiousness + Engery= Reality)
    1. 의식이라는 말은 여러가지를 포함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생각, 의도, 의지, 우리가 원하는 것...이런 것들은 에너지가 있어야 이루어집니다. 람타는 그래서 의식과 에너지는 절대로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라고 하지요. 여기에서 그 유명한 C & E 훈련이 나온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CPR (당신 현실 창조, Creating Your Reality)에서 배운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에너지를 밑에서 위로 끌어올려...우리가 원하는 것을 창조하는 훈련입니다. 밑에서 위로라는 말은 나중에 트라이어드 설명할 때 말씀드리겠습니다.
  3. 미지의 것을 알린다. (Make Known The Unknown)
    1. 인류 역사를 통해서 사람들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이 무엇이고 그리고 내가 누구인가? 라는 것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여기에서 철학이, 종교가 나온 것이지요.
    2. 람타의 가르침을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양자학적으로, 과학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3. 그리고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의자가 만들어 진 목적은 사람이 앉는 것이듯,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철이 들고 부터 궁금하던 것인데...이것이 바로...람타 가르침의 3번째 초석은 '미지의 것을 알린다'입니다. 즉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창조한다라는 의미이지요. 알려지지 않은 것을 알린다입니다.
    4. 그렇다면 어떻게 삶의 목적, 미지의 것을 알리는가? 혹은 창조하는가...이것은
      1. 우리가 무엇인가를 원한다.
      2. 그것을 창조한다.
      3. 창조한 것을 경험한다
      4. 경험을 통해서 감정이 생긴다.
      5. 이 감정으로 인하여 우리는 또 다른 것을 원한다.
      6. 그것을 원한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끊임없이 '미지의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1. 그런데 문제는 4번에서 경험으로 인한 감정에 중독되어...과거에 살면서...(경험이 과거의 산물이라는 것 아시겠지요?) 똑같은 것을 반복하고, 똑같은 것을 창조하면서..남을, 세상을 원망하고...그래서 남는 것은 몸의 병뿐이라는 것입니다.
  4. 내 자신을 정복한다. (Conquer myself)
    1. 어쩌면 위의 3가지는 이론적으로 알 수가 있지만...사실 이러한 것을 이루려면..가장 중요한 것은 내 자신을 이기고 극복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 특히 두뇌의 신피질에 있는 우리의 성격, Personality 에 들어있는 모든 믿음체계, 사상체계, 습관들을 이기는 것이 우리 모두의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람타는 이 4가지 초석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가르침을, 양자역학을 바탕으로 가르칩니다. 하지만 람타가 다른 가르침과 다른 점은...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것인데...."내가 말하는 모든 것은 당신들에겐 철학이다. 그것들을 당신들이 직접 삶에 적용하여 경험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철학이자 지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은 나에겐 진리이다. 나는 그것을 스스로 경험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람타는 우리에게 가르치고 그것들을 실지로 경험할 수 있는 훈련을 가르칩니다.



람타는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트라이어드 (Triad) 혹은 피라미드를 가지고...우리 의식의 변천사를 설명합니다. 7차원에서..6차원..5차원...4차원...3차원...2차원...1차원...(설명이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에...단지 우리가 끊임없이 윤회하는 곳은 일차원, 이차원, 3차원의 세계라고 합니다.) 이 트라이어드 즉 피라미드는 사실 우리들 가까이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가 바로 그것을 보여줍니다.


이 피라미드는 (여기에서 피라미드라고 하는 것은 7차원 모두가 다 들어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세포와 DNA 에 다 들어있으며...우리의 의식수준에 따라 우리가 어떤 차원이고 접근 가능하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아봐타/예수님/부처님들은 1,2,3 차원의 세계를 뛰어넘고..다른 차원 즉 4차원 이상의 차원에 도달한 분들입니다. (사실 이분들이 7차원까지 그리고 제로 포인트 즉 원점까지 도달했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이것을 바탕으로 님이 하신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비욘드 더 마스크, 이것은 우리가 C & E 훈련할 때 사용하는 음악 시디입니다. 랩퍼 가수들 있지요? 이들의 평균수명이 20여세라고 합니다. 그들은 대개 자살/타살 혹은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랩송의 가사들이 죽는 것 아니면, 죽이는 것 하여튼 요상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듣는 이러한 가사들이...우리의 뇌에 신경망을 만들어...결국 그런 것들이 현실로 되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래서 람타 스쿨에서 사용하는 음악들은 하나 하나...우리의 뇌의 뉴런들을 자극하는 음악들을 선정한 것입니다.


비욘드 더 마스크는 데비 크리스티라고 하는 람타의 13명 제자중의 한명으로서 음악의 마스터로 람타 스쿨에 나오는 대부분의 음악을 이분이 선정합니다. 비욘드 마스크는 이분이 만든 시디로 우리가 C & E 를 할 때 사용하는데...우리 두뇌의 특별한 부위를 자극하도록 만든 시디입니다. 이번에 제가 이 시디를 많이 주문했답니다. 그 때 사실 수가 있어요. 저는 이 시디를 가지고 블루바디 댄스도 한답니다.



C & E, 이것은 위에서 잠시 설명했는데... 의식과 에너지가 우리의 현실을 만든다라는 전제하에...이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에너지를 밑에서 위로 끌어올리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호흡을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호흡을 자동적으로 하지만 (사실 이것은 우리의 잠재의식이 조절하는 것인데) C & E 를 통해서 우리 스스로 우리의 호흡을 통제하고 조절하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는 훈련법입니다. 이번 람타 캠페인에선 이것을 배우지 않는다고 하네요. 아쉽게도...그래서 사람들이 원하면 10월달에 제가 따로 이것을 한국에서 이틀 잡아 하려고 합니다.


블루바디 댄스, 이것은 내가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하는 훈련법인데....청사진 아시나요? 건물 지을때 우리는 항상 청사진부터 만들잖아요? 혹은 우리가 무엇을 하건 계획부터 만들잖아요?
여기에서 말하는 청사진이 바로 블루 그리드에서 나온 것인데...우리 인간이 육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3차원부터라고 합니다. 그 이전 즉 제 4차원에선 블루 그리드로 생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논리는 과학적으로 혹은 의학적으로 증명이 된 것으로...우리의 세포를 분해하여 DNA 로 가서...그것을 다시 분해하면....파란 거미집같은 것이 나오고 나중에 기타줄같은 것이 나옵니다. 이것을 영어로 filament 라고 하고...에구 잘 설명이 안되는데...(혹시 이것을 제대로 설명해서 올려주실 분 있으면 더욱 좋구요)...하여튼...세포를 분해, 또 분해하면 결국 나오는 것을 파란 거미줄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건물을 지으려면 청사진을 먼저 만들어야 하지만...건물 모양을 바꾸고 싶으면 그것도 청사진을 바꾸어야 하듯이...우리의 몸의 질병을 고치고 싶으면...여기 4차원의 우리의 몸인 블루바디까지 올라가야 한다고 합니다.


람타에 의하며..예수님이 장님을 고친 것도...불구자를 걷게 한 것도...바로 블루바디에서 고친 것이라고 합니다. 람타는 우리에게 블루바디를 만들어 춤을 추게 만듭니다. 사실 이 블루바디를 통해 질병을 고친 예들이 많은데...가장 최근의 예는 지난 번 한국에서 홍콩 비기너에 가신 8분중에 한분이 홍콩 갔다와서 2 센티미터 키가 컸어요. ㅋ 30살이 넘었는데...그리고 얼굴 선이 굵어지고 눈빛도 달라지고...(죄송합니다. 님 이야기 해성...ㅋ 나중에 용서빌겠습니다. 하두 신기해서..)


그런데 계속해서 키가 큰다고합니다. 네, 물론 이분의 변화가 블루바디때문이라는 증거는 없지만...우리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분보다...블루바디를 훨씬 더 오래배우고 연습했는데..제 키는 그대로 있습니다. ㅠㅠ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영화 아봐타에서 윌체어에 있던 주인공이 나비족으로 가면서..걸을 수 있는 것도...바로 이러한 개념에서 나온 것이랍니다. 거기에서도 블루바디가 나오잖아요? 람타에 의하면 의학계에서 람타 가르침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때문이라고 하는데....블루웹도 덩달아 같이 설명이 되었네요.


촛불명상 혹은 캔들 포커스, 람타는 우리 두뇌에 3개의 걸작품(Tour De Force)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전두엽 혹은 신피질에 있는 우리의 성격 즉 personality 이며, 다른 하나는 중뇌이며 마지막은 소뇌입니다. 피라미드에서 7가지 차원에 대해서 람타는 설명했는데...각 차원마다 혹은 에너지 막마다...다른 주파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첫번째 에너지 막 혹은 일차원은 헤르츠 주파수를 가지고 있고, 이차원은 인프라 레드라고 해서 적외선입니다. 그런데 어떤 것들이 물질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즉 헤르츠 세상에 물질로 구현되기까지 7가지 단계를 다 갖추어야 하는데, 2차원 즉 적외선까지 오면 뿌옇게 그림자같은 모습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귀신들이 이차원에 있는 것이고...이것들을 중뇌가 깨인 사람들은 보는 것이구요) 그런데 만약 어떤 것들이 구현되기 전에 적외선에서 뿌옇게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미래를 본다, 미래를 예견한다라고 하는데 우리 모두가 이런 능력을 당연히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중뇌를 개발하면...


우리의 중뇌를 개발하는 훈련들이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촛불명상입니다. 그래서 명상이나 수행을 오래하신 스님들이 미래를 보는 이유입니다. 카드읽기도 중뇌를 개발하는 훈련인데...람타가  카드 읽기를 중요시 하는 이유는 우선 우리가 아무데서나 쉽게 가지고 다니면서 할 수 있다는 것 때문입니다. 촛불명상을 하려면 깜깜해야 하고 촛불과 방이 있어야 하는데...카드 읽기는 그런 것들이 필요없잖아요. 저도 카드 읽기가 됐다 말다 합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 나의 예견 능력이 아주 아주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람타 스쿨 학생들이라면 무조건 카드 읽기를 연습하라고 합니다. 이번 캠페인때 카드 살 수 있어요.



님의 질문에 대해서 대강 설명을 드렸습니다.

RAMTHA 람타 - 람타 한국에 대하여

질문자 : 한국인들, 한국에 대한 강한 애착이 있다 들었는데요.
 
람타 :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때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라 생각하고 왔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레무리아 시대 때, 레무리아 인들이 많이 윤회하여 태어난 곳이더군요. 그리고 옵스들 자체도 옛 레무리아때 보던 옵스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더군요.
 
질문자 : 옵스? 옵스가 뭐지요?
 
람타 : 옵스는 제가 잘 쓰는 단어인데 영만 존재하는 형태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들이 아직 정령처럼 이곳에 머물고 있더이다.
 
질문자 : 한국에 레무리안 인들의 옵스가 많이 존재해있군요.
 
람타 : 한국에 와서 강의를 했을때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여러나라 사람들이 있었으나 한국사람들의 눈만큼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또한 평균적으로 세계 어느 나라 사람들 보다 아주 고진동이었고 아무튼 한국사람들은 아주 특이한 점들이 많아서 애착을 갖게 되었습니다.
 
질문자 : 그렇군요, 저도 한국인이지만 한국을 매우 사랑합니다. -중략- 대화가 길어진 관계로 한국인이라든지 어떤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까?
 
람타 : 저는 바람으로 떠돌며 아주 아는 것이 많으므로 자주 불러주시기 바라며 제가 작년에 한국을 떠날때 한국이 아주 크게 부상할것이라고 말하고 갔는데 한국은 앞으로 세계의 중심이 될 것이고 영토 또한 아주 엄청나게 확장될 것이고 한국에선 뛰어난 지도자들이 아주 많이 나올것입니다. 그리고 예전에 제가 살았던 땅인만큼 어쩌면 저또한 상승 후 이 땅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아마 상승때 어떤 큰 자연재해들이 불가피 할 것이지만 아주 중요한 위치인 만큼 하늘에서도 어떠한 보호가 이루어질 것이고 빛과 어둠의 싸움 또한 저는 빛의 승리를 확신 합니다. 승리한다 하여 어둠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빛에서 원하는 만큼 많은 사람들이 상승으로 끌어올려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저는 교육의 대부분을 양자학에 기초로 합니다. 양자장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과학과 우주의 기초라고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을 파헤쳐보면 결국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끌어당김 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정이라는게 있다고 들었는데 그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끌어당김이 되고 제가 말하는 양자학의 기초가 됩니다. 그것이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이라면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가슴속에서 부터 .. 아니 태어나기전 부터 그러는 것 같은데  그 힘이 상승과 맞물려 한국을 아주 크게 부상하게 할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천재와 보통의 뇌가 있다고 했을때 한국인들은 천재적인 뇌를 갖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한국을 찬양하고 아끼게 된 이유 입니다. 원하면 한국에 다시 올수있지만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저를 찾는자들이 너무 많아서 일정을 못 잡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 대화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순간 만큼이라도  저는 아주 감회가 새롭고 기쁩니다.
 
질문자 : 오늘 아주 즐거운 대화였습니다.
 
람타 : 아! 이 연결자분께서 말하시길 당신께서는 와인을 아주 좋아하신다 하시는군요.
 
질문자: 네 저는 와인을 아주 좋아합니다.
 
람타 : 저는 표현하자면 와인을 숭배하는 정도 입니다. 와인은 제 나름대로의 의견이지만 사람이 마셔서는 가치를 평가 할수 없는 신들만이 즐기기에도 충분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자 : 언제 와인 한잔 같이 하시지요.
 
람타 :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질문자 : 차원 상승 후에는 람타께서도 모습을 드러 내실 수 있습니까?
 
람타 : 차원 상승이 5차원으로 이루어진다면 제가 원하는 어떠한 모습으로도 제 모습을 드러낼수 있습니다.
 
질문자 : 아 근데! 람타께서는 인간의 몸을 가진 상태에서 초탈을 하였다고 들었는데..
 
람타 : 인간의 몸을 갖고 초탈을 한것이 아니고 인간의 몸은 죽고 다시 바람의 신으로 돌아 간 것 뿐입니다.
 
질문자 : 인간의 몸은 죽었다뇨? 인간의 몸은 그대로 죽어 땅에 뭍히고 바람으로 돌아갔다 이 말입니까?  모든 세포의 진동수를 높여서 바람이 된줄 알았는데..
 
람타 : 그게 이 물질세계에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 않습니까?
 
질문자 : 인간의 몸이 그대로 초탈했다는 얘기가 파다한데.. 그런 수련도 열심히 하는 분들도 계시고..
 
질문자 : 그것 또한 신화일뿐입니다.  몸은 죽고 영은 단지 제가 바람의 신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처참한 기억과 분노의 시절과 나중에 모든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깨닫게 되었지만 결국에 육체는 죽고 영이 자각을 한것이지요.
 
질문자 : 그렇게 따지면 모두 육체를 벗으면 영의 기억을 되찾으니 초탈이란게 먼곳에 있던게 아니군요.
 
람타 : 네 그 신화들이 누가 말한것이든 이미 널리 퍼져있으니 뒤집을수도 없는 노릇이군요. 어떤 영웅이든지 신화라든지 신비주의는 필요한것 아니겠습니까?
 
질문자 : 예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람타께서 좋은 일들을 많이 하고 계시니 저는 지지합니다.
 
람타 : 감사합니다. 자주 뵙길 희망합니다.
 
질문자 : 네 오늘 대화 감사했고 또 뵙지요.





RAMTHA 람타 - 16 환생

당신은 신과 유아독존의 원리를 경험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유아독존의 원리는, 신이라고 하는, 생각의 영역에서 창조된 모든 태도, 모든 감성, 모든 환상을 망라한다.

마스터 : 특별히 물어 보고 싶은 질문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다. 당신이 누구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우리들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느낀다.
람타 : 지금도 그렇고... 또 늘 그랬다.
마스터 : 그러나 두 가지 일반적인 질문을 하고 싶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는 항상 더 나은 쪽으로 진행한다고 당신은 말해 왔다.
람타 : 그렇다. 이 자리에서 떠날 때는 존재의 더 위대한 순간으로 가게 될 것이다. 당신의 삶은 항상 그 전 순간보다 더 위대한 순간으로 진보하기 때문이다.

마스터 : 그렇다면 환생의 이치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는가? 더 나은 데를 향하여 이곳을 떠나지만, 다시 이곳에 돌아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배우기 위해서, 이곳으로 보내지는 것인가?
람타 : 마스터, 어째서 당신은 미래에 이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더 나은 무엇인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마스터 : 이곳에서 사는 것이 투쟁인 것 같다. 고통과 슬픔을 너무 많이 감당해야 된다. 우리 자신이 많은 고통을 경험하지는 않더라도, 우리 주위에서 그러한 일을 보게 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고통이 많은 것만은 분명하고, 가까운 미래에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어렵다.
람타 : 잘 알겠지만, 이곳에서 지난 시간의 ‘고통’은 굶주림이었다. 모든 이들이 항상 배가 고팠다. 그래서 주린 배를 채울 빵 한 조각, 치즈 약간, 신선하지 못한 포도주 한 모금을 사기 위한 푼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을 했다. 이제 그들을 보라. 모두가 비만과 전쟁을 하고 있다! 모두 배불리 먹고 살쪘다. 오다가다 사람들이 한 마디씩 한다. “쯧 쯧 아름답지 못해!” 그래서 지금, 모두 다시 굶기 위해서 투쟁을 한다… 삶은 모험이 아니던가? 이곳에서 ‘고통’이라는 것은, 마스터, 에고이다.
마스터 : 좋다, 그렇지만 내가 초점을 정확하게 따라가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당신은 삶이 순환한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 순환에 끝은 없는가?

람타 : 삶은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결코 그대로 반복되지도 않는다. 항상 변한다. 그뿐만 아니라 부단히 지속되기 위해, 매순간 진화한다. 삶은 모든 것을 포함하며, 삶의 존재, 삶의 있음 덕분에, 다음 순간을 창조한다. 각 실체의 태도에 따라, 그 다음 순간이 창조된다. 쳇바퀴 도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은, 당신의 삶에 대한 태도이다. 환생은 진실이다. 단순히 몸 하나를 버리고, ― 그의 태도가 그를 죽도록 허용하기 때문에, ― 이곳에서나 혹은 물질 세상의 다른 곳에서, 다른 몸을 가지는 것이다.

왜 사람들은 이곳에 오는가? 그들은 이곳에 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강제로 이곳으로 돌아오게 된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이 있던 곳에서 쫓겨나, 육신으로 되돌아오고, 자궁을 빠져 나오기 위해 애쓰고 난 뒤에는, 당신을 둘러싼 에고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을 이곳으로 보내는 법령 따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당신의 의지에 반하여, 당신이 무엇을 하도록 강요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만이 이곳으로 돌아올 것을 결정한다. 이 지상에서 다시 표현하기를 원한 이는 당신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불행을 탓할 누군가를 찾고 있다면, 당신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아야 할 것이다. 당신만이 전적으로 당신의 아름다움, 당신의 존재, 슬프거나 놀라운 당신의 삶에 책임이 있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할 때가 되었다! 아무도 이 세상에 환생하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그러나 무한히 긴 시간을 이곳에서 살았던 인간은, 이곳만이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몸을 잃고, 감성적인 애착을 가졌던 것과, 이곳에 있는 장난감에서 멀어지게 되면, 그는 곧 서둘러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원한다. 이곳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천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도 하다. 그에게는 실제로 그러하므로. 당신이 이곳에 있는 단 하나의 이유는, 당신이 이곳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당신의 영혼을, 충족시켜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기쁨이나 슬픔, 동정과 분노, 고통, 그밖에 환상으로 이루어진 이 지상에서, 당신이 경험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을, 표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이 원하는 만큼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다가 그 일에 지치고, 지겹고, 싫증나면, 태도를 바꾸어 다른 감성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단순한 것이다. 유토피아가 고통과 슬픔, 지옥과 같은 환경과 양립될 수 있겠는가?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태도 하나에 달렸다. 당신은 신을 경험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유아독존의 원리를 살아보기 위해서 이곳에 돌아왔다. 유아독존의 원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망라한다. - 신이라고 하는, 생각의 영역에서 창조된 모든 태도, 모든 감성, 모든 환상을. 왜 당신이 지금 당신인지 아는가? 전에 다른 역할을 다 해보았으며, 지금은 이 역할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지금처럼 부유한 실체가 아니라, 굶주리는 아이로는 태어나지 않았을까?  당신은 부유한 실체가 되고 싶었던, 굶주리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다. 왜 지금은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빵을 굽는 빵집 주인이 아닌가?  전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빵을 굽는 빵집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에게서 빵을 사는 실체이다.

이 왕국에서 경이로운 것은, 지속한다는 것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면 어떠한 배역도 될 수 있다. 이 삶이라는 무대에서 진보해 나가면, 당신은 당신 존재에게, 가장 큰 배움을 제공해줄 환상이 전개되는 새로운 장으로 나아간다. 그 무대에서 당신은 왕이나 빈민이 될 수도 있고, 사랑하는 이가 되고, 사랑 받는 이가 되며, 노예가 되고, 자유인이 되는 자유를 갖는다. 이 모든 환상들이 당신의 영혼을 충족하는 데 필요한, 이해를 제공해 줄 것이다. 마스터, 당신이 겪어 보지 못한 경험도 무수히 많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 있고, 되어 보지 못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지고한 평화로움으로 살아가면서도, 필요한 것은 단순한 이들이 있다.
그들이 필요로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간단히 발현시킨다. 그들은 당신이 경험하려고 선택해 본 적이 없는, 태도와 모험을 생각으로 즐기면서, 행복하고 기쁘게 살아간다.아직도 살아 보지 못한 많은 이해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장엄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단순히 살아간다는 이유 때문에, 사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이유만으로 사는 것은,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그때가 평화를 알게 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기쁨을 알게 되는 때이다. 마스터, 그때가 다시 한 번, 당신이 온전히 신이 되는 때이다.

그러한 삶의 이해는 아직 경험해 보지 않았다. 부양해야 하는 역할, 노력해야 하는 역할, 경쟁해야 하는 역할, 모범을 보여야 하는 역할, 고통받는 역할, 신경과민인 역할 등에, 당신이 너무 강요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역할을 당신의 몫으로 받아들였고, 그래서 그런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당신이 삶의 다른 부분을 살아보게 된다면, 그러한 것들은 당신이 삶에서 선택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찮은 조각들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삶은, 인간의 역사 속에 일어난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멋진 것이다. 불행하게도, 도시 한가운데서 앞뒤가 꽉 막힌 사회의식이라는, 두터운 벽에 갇힌 도시인들은, 이곳이 살아가기에 불행하고, 비천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인간의 이상들과 위협, 그리고 제한된 의식으로부터 벗어날 용기를 얻고, 당신 내면의 신과 하나가 되어, 대자연의 초야에서 살게 된다면, 삶은 진정 광휘로운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지속적이며, 무한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이곳에 돌아온 이유는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당신이 신과 생명의, 웅장함을 경험할 수 있을 만큼, 당신은 당신을 이 지상에 붙들어 두는 것들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신은 빙하 위를 걸어보지 않았고, 돌다리 밑에 숨어 보지 않았으며, 겨울의 하얀 눈에 선명하게 대비되는, 아름다운 빨간 새 한 마리 가 앉아 있는 것을, 창문 너머로 내다보지 못했다. 깊은 동굴에 있어 보지 않았고, 사막을 걸어 다녀 보지도 않았으며, 먹이를 찾는 뱀을 지켜보지도 못했다.
당신은 거대한 피라미드 안에서, 홀로 잠을 자 보지도 않았고,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 -을 탐구하러 나서 본 적도 없다. - 이러한 곳은 수도 없이 많다. 대양 한가운데서 배를 저어 가서, 거대한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을 보거나, 빽빽한 숲 속에서, 사슴을 쫓아가 보지도 못했다. 당신은 당신 존재를 흥분하게 하고, 전율과 경이로움을 느끼게 하는, 많은 것들을 해보지 않았다. 이러한 경험들 중, 어느 하나도 당신의 직업이나 학벌, 지위, 신체적인 나이와는 관계가 없다.

그것들은 당신이 아직도 경험해야 되는, 삶의 측면들이다. 당신이 그러한 일을 하게 되면, 신경증이나 두려움, 굴레 , 망설임 등은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리고는 기쁨에 넘쳐, 폭발해 버릴 것 같은 느낌이 오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 누군가가 당신이 폭발할 것 같은 모습을 지켜봐 주기를 바란다든지, 또한 누군가로부터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당신의 본성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다. 이곳에서 당신이 선택한 것을 모두 경험하도록, 당신 자신에게 허용하지 않았을 뿐이다. 왜냐하면 생명의 기쁨이나 자유와는 전혀 거리가 먼, 환상에 불과한 것을 이상으로 삼도록, 당신은 강요받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이 이곳에 돌아오고 싶지 않다면, 돌아오지 말라! 당신은 돌아올 필요가 없다, 영영. 나는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바람과 함께 초탈하였고, 나 자신이었던 모든 것을, 함께 가지고 갔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자유로운 실체가 되었다. 자유로운 실체! 내가 이곳에 살았던 동안에 했던 모든 것을, 초월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했고, 이 삶을 포용했으며, 신이 되는 일에 몰입하였다. 무지하고 비천한 야만인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당신도 할 수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여기에서의 삶을 마치는 길은, 살고 사랑하고, 그리고 단순한 것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생명의 자유를 위협하고, 제한하며 구속하는, 그러한 이상을 자신에게서 제거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을 비교하는 일을 멈추어야 한다.

사회의 모범이 되기 위해서 사는 것을 버리고, 그 대신에 당신 존재 안에 있는 어떠한 것이든지, 당신만의 이상과, 당신만의 진실을 따라서 살고, 당신의 영원한 존재를 사랑한다면, 그때에 당신은 꽃과 하나가 되고 물고기와 하나가 되며, 결국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된다. 그 때 당신은 말할 수 있다. “나는 이 경험을 마쳤다. 이곳에서의 모든 삶을 사랑했다. 그러므로 새로운 모험을 위한 준비가 되었다. 저 멀리 있는 왕국과, 새로운 이해와, 존재의 전혀 다른 길을 위한 준비가 되었다.” 당신이 이러한 일들을 끝마쳤을 때, 마스터, 빛나는 영광과 함께, 이 지상을 떠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떠났다.

나는 이 지상을 사랑한다. 나는 자주 계곡을 따라 거닌다. 나무사이로 부는 바람이 되고, 어린이의 웃음 속에 있기도 한다. 이곳에 있는 모든 가치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이곳의 삶을 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이들, 내 사랑하는 형제들의 아픔을 안다는 것이다. 나는 해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적용하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당신나 다른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표현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그렇게 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환생이다.

마스터 : 고맙다. 당신이 말해 준 것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아야겠다.
람타 : 그렇게 하라. 그렇게 할 때, 당신은 당신 존재에게 좀 더 친절해지고, 당신 존재가 더 쉽게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허용할 것이다.
마스터 : 이 지상으로 들어오지 않을 때에,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람타 : 당신이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표현하는 일이다. 유일한 차이는, 당신의 경우는 표현이 제한되어 있지만, 내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영원에까지 닿아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의 종말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며, 사실 그러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바람과 함께 다닌다. 그것이 내 궁극적인 소망이었으니까. 나는 행복하다. 나는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또한 그녀의 삶 속에서, 그녀를, 그의 삶 속에서, 그를... 나는 당신의 환상을 바라다보고 있다. 그 환상이 당신에겐 그토록 심각한 것이고, 무서운 빛깔로 채워져 있지만, 나는 그저 웃을 뿐이다. 왜냐하면 당신들 모두는, 더 많은 것을 보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많은 것이 있다.

나는 표현하고 있다, 마스터,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라는 존재와 더불어, 행복해하고 있다. 당신이 여기에서 만나고 있는 나로서 있지 않을 때는, 나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모든 것이 나오는 그 터전이다. 일곱 번째 차원은, 생각의 전체로서, 행성을 궤도에 묶어 놓고, 세포를 결속하고, 영원의 범위까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거대한 허공이기 때문이다. 일곱 번째 차원의 실체가 되면, 이제 차원이라는 것은 없어진다. 오직 있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것, 모든 앎, 모든 생각의 모든 느낌이 된다.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숙고해 보라. 생각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까? 태양의 표면에까지 생각을 이르게 할 수 있는가? 달의 뒷면은 어떤가? 천상의 크고 작은 별에는? 다른 세상에 있는 다른 실체에게 생각을 보낼 수 있는가?  한 순간에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을, 당신 안에 가지고 있다. 그러한 표현을 원하지 않는 이는, 바로 당신이다. 그러한 표현을 원한다면, 바로 그렇게 된다.

마스터 : 우리가 왜 자꾸 돌아오게 되는지, 깨닫게 되는 때가 언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람타 : 그렇다. 그것을 행복이라 한다. 그 순간은, 당신이 당신 이외의 그 어느 실체도 아닐 때, 당신이 있는 바로 이곳에서 얻어진다. 그것이 바로 깨달음의 순간이다. 한 가지가 더 있다, 마스터. 당신에게는 슬프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이, 다른 실체에게는 종종 행복일 때가 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은,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 그러나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행복에 대한 이상은, 사물의 색깔을 마음대로, 파란색, 연보라색, 핑크색으로 바꾸어 버리는 팅커벨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어릿광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있는 모든 이는 행복하다.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정확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프고 싶어 하면, 아프게 된다. 불행하고 싶어 하면, 불행하게 된다. 그들이 그러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도 알다시피 누군가를 억지로 웃게 만들려 한다면, 그는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삶을 즐기고. 이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이 순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때가 되면, 그들은 죽어 버린다. 그렇게 해야 된다고 그들이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스터, 존재의 기쁨과 평화 속에서 어느 날, 주위에 있는 이들을 쳐다보면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든, 무한히 행복하다는 것을 당신은 깨닫게 될 것이다.
 

마스터 : 질문을 한 가지 더 해도 되겠는가? 다른 생에서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고 했다. 전생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말해 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람타 : 마스터, 청중을 대기시켜 놓고, 소위 말하는 당신의 ‘기록’ 전체를 명백하고 상세하게 풀어놓는다면, 당신의 다음 생까지도, 우리는 계속 여기 있어야 할지 모른다. 당신은 이곳에서 이만 삼백 사십 육회하고도 반을 살았다. 그래서 당신의 과거를 당신에게 말해 주려면 어느 때, 어느 지역에서, 어떠한 환상이었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풀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 이 현생의 삶을 지루해하고, 아무런 느낌을 못 갖는 많은 이들이, 때때로 과거의 삶에 집착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아마도 과거에 삶의 활력을 가지고 있었거나, 그들이 지금 부족하게 느끼는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고,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를 가장 낭만적이고, 영웅적인 삶인 것처럼 상상하고 있다. 왜냐하면 현생에서 삶이 재미없고 지루할 때, 자신은 전장에서 매우 영웅적이었고,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많은 여성들을, 뒤로하고 떠났다는 식으로, 그들은 항상 결론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왔을 때, 도시 전체가 아주 오랫동안 축제를 벌였다거나, 아니면 그들은 그 시대에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웠으며, 많은 남성을 연인으로 거느렸을 것이라는 식이다.

이제, 이것을 모두 이해해 주기 바란다. 당신들은 많은 생을 살았다. 그 생은 모두 훌륭했으며 낭만적이었다. 비천하고 미개했으며, 유명하기도 했고, 악명을 날리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의 그 모든 모습은, 지금의 당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바로 지금의 당신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위대하다. 마스터, 당신은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생에서 축적된 앎과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스터, 지금 현재는 과거 그 모든 삶의 목적이다. 지금 당신이 어떤 모습, 어떤 환상, 어떤 경험을 하든지 상관없이, 당신이 지금보다 나았던 적은 결코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지혜, 앎, 사랑을, 과거 어느 때보다, 현재에 더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당신을 현생 이전의, 다섯 전생으로 데려간다면, 당신은 자기가 누구인지도 구별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아라는 요소를 과거의 어느 때보다도, 훨씬 정제시켰기 때문이다. 당신의 과거 어느 생에서, 지금의 당신을 본다면, 용감하고 천재적이며, 영웅적이라고 소리칠 것이다. 과거의 자신은, 지금의 당신을 보고, ‘신들린’ 사람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당신의 이해는, 그 옛날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기 때문이다.

과거에 당신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해답을 구하기 위해서, 과거를 돌아본다면, 당신은 지금 순간의 삶을 결코 경험하지 못하고, 이 현재의 삶이 미래를 위해서 가지고 있는, 해답도 찾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머리속은 뒤돌아보느라고 너무 바빠, 새로 오는 현재를 볼 겨를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마스터, 과거에 당신이 누구였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지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르고 있다.

우리에게 전생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좋다. 내일을 위한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경험을 함께 하였던, 근본적인 아름다움은, 아직도 조용히 숙고하며, 마침내 깨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위대한 신만이,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충족시킬 수 있는 힘과,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 지금은 항상 새롭다. 지금은 허용된 순간들이다. 이 새로운 순간이, 어떻게 되어야 할지는, 당신이 자신의 태도로 결정한다. 당신은 불쾌하고, 괴롭고, 슬프고, 불행하게 느낄 수 있다. ―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그러나 그 다음 순간에, 태도를 바꾸어 사랑이 넘치고, 자유로우며, 매력적이고, 즐겁고, 기쁨에 차며, 활기차게 될 수 있다. 바로 그 순간에. 그리고 그 다음 순간에, 이전 순간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우울하고, 밝으며, 헌신적이고, 후회할 수 있다 ― 당신이 원하는 대로.

중요한 것은, 마스터, 당신이 지금 누구인지를 알고, 이 삶에서 행복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다. 미래의 생에서, 이 현생을 기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기를 원한다면, 매순간을 기억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영혼 속에 항상 살아서 남아 있게 만들라. 무한한 삶을 살아가고 싶다면, 매순간을 완전하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스터 : 내 미래가 어떤지 말해 줄 수 있는가?
람타 : 미래에 당신은 어떤 사람이겠는가? 당신은 항상 당신일 것이다. 눈이나 피부색, 용모는 변하겠지만, 당신은 언제나 당신일 것이다. 당신은 언제나 동일한 영혼을 지니며, 당신의 존재는 동일한 신의 영성을 지닐 것이다. 당신이 그리고 싶은, 환상 속의 인물로 다음 생을 살 것이다. 그것이 이 지상에서라면, 생명의 탄생 과정과, 당신의 특별한 구상에 따라, 자궁을 거쳐 태어나, 당신 스스로 설정한 게임과, 환상이 충족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아니면 ,당신은 간단히 환상에서 벗어나, 더 위대한 이해의 세상으로 갈 수도 있다. 현재를 사는 법을 배우라. 이 생을 한껏 살고, 당신 자신을 경험하라. 바람을 타라. 생각을 조종하여 달에까지 항해해 보라. 태양에까지 찬란한 생각을 비추어라. 태양이 당신을 알아 줄 것이다. 별 위에 앉아 보라. 물에게 말을 걸라. 그것은 당신들 모두이고, 그것은 모두 신이며, 그것은 모든 삶이다.

마스터 : 고맙다. 마지막으로 질문이 하나 있다. 내가 어느 세상으로 진보해 나가고 있는지 말해 줄 수 있는가?
람타 : 신에게 가고 있다, 마스터. 당신은 당신 안에 있는, 신의 영성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다. 당신 안에 있는, 신의 영성을 다듬어 나가고 있다. 당신은 신으로서 이곳에 왔다. 신으로 이곳에 와서, 육신을 빌려, 배고픔과 더위, 추위, 그리고 영토 분쟁 등에 휘말린 채로, 당신 본래의 신성과 힘, 모든 것을 다 해볼 수 있는, 진지한 지성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하여 이 세상과 연결되었다.- 이곳 또한 일곱 번째로 향하고 있다. 당신은 일곱 번째의 이해로 진보하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에서, 신을 아는 것이다. 그러한 앎의 최고점은, 당신이 그 앎의 제공자란 것이고, 정말로 당신이다.
마스터 : 그렇게 될지어다.

람타 : 그렇게 될 것이다.

RAMTHA 람타 - 15 잊혀진 신성

인간은 자신이 신성하지 않다고 자주 듣게 되면, 그것이 확고한 믿음이 되어 버린다. 귀 여린 진실의 탐구자인 인간은, 따돌림 당하지 않으려고, 그토록 어리석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한때는, 인간이 자신의 유산과 계보를 알고 있었다. 한때는 인간이 신을 알았다. 자기 존재에게서 떨어져 있는 근본으로서가 아니라, 지속되는 생명의 숭고한 있음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신성하고, 영원한 자아의 바로 그 생명력인 생각으로서, 신을 알았다.
한때는 인간이 그것을 알았다. 인간은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우고, 다가오는 세대에게 ‘내면의 불꽃', 마음속의 신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한, 상징으로 남겨 주었다. 인간 역사의 흐름 속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었지만, 그 피라미드는 인간의 위대함과, 신성함의 상징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인간이 이 지상에서 처음 살기 시작하면서, 인간이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때까지만 해도, 한 육신으로 수천 년을 살았다.
육신을 불사하게 하는 힘은, 존재하는 상태에서, 인간이 표현하는 무한한 생각의 순수성이었기 때문이다. 인간, 신-인간은, 이 지상에서 처음으로 삶을 경험하면서부터,
그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잊기 시작하였다.
왜? 그는 이 놀라운 물질계의 놀이마당을 너무 좋아했고, 그래서 이곳에서 경험하고 창조하는 것만이, 중요한 모든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자신의 창조성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에, - 또 그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체를 유지하기 위해서, - 무한한 사고를 할 수 있는, 장엄한 창조물인 인간은, 생존, 질투, 그리고 소유 같은, 제한된 생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는 존재, - 그의 영혼과 영성 - 는 영원하다! 아무 것도 그것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신이 그 자신을 위해서, 지구의 흙으로 창조한 이 육신은, 그를 점유하고 있는 불사의 존재인, 생각에 종속된다. 인간이 어떤 생각이든지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도록 허용한다면, 그것은 그 몸에 발현된다. 육신은 인간 왕국의 궁극적 부분으로, 그 속에 거하는 신의 사고 작용에 의해 지탱된다. 신-인간이 생존이라는 태도를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몸에 영원한 생명력을 점화시켜 주는, 생각의 힘을 약화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몸은 쇠약해지기 시작하였다. 몸이 쇠약해지기 시작함에 따라, 그의 두뇌가 추론할 수 있는, 능력도 감퇴되었다.
추론하는 능력을 잃게 되자, 두려움이 그의 의식에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두려움의 요소들이, 인간의 사고작용 안에서 하나의 태도가 되었을 때, 육체는 두려움의 힘과, 그 영향으로 걱정과 질병, 고통을 받기 시작하였다. 이 지상에 처음 건설된 문명은, 위대한 깨달음으로 채워져 있었으나, 그들 사고 작용의 무한성은, 죽음에 대한 예상과, 생존을 위한 태도에 따라, 점점 흐릿해져 제한적으로 되어 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긴 생존태도는, 생존을 위한 이른바, ‘본능’이라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게 넘겨졌다.
왜냐하면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것은, 그의 세포와 유전자 구조 안에 새겨지게 되기 때문이다.신은 몸의 형태를 빌려, 자신의 창조성을 경험하려는 욕망으로 물질의 한계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신은, 인간으로서, 제한이라는 태도를 이 지상에서 경험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육체적인 경험 속에 갇히게 되었다. 그 신의 첫 번째 육신이, 죽음을 경험했을 때, 그는 허공이라고 하는 곳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이 허공은 빛의 차원으로, ‘전지한 신’을 이해하는 의식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물질의 세상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곳이었다.
그 신은 이제 더 이상 무한한 생각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그는 그 자신의 사고방식 안에 한계라는 변형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물질계 놀이마당이, 경험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임을 발견하였던 신은, 삶의 진보를 계속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기를 몹시 갈망하였다.  그래서 신은 자기 자손의 씨를 얻어 다른 육신을 가지고 돌아왔다. 물질계에서 계속 경험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리고 전생에서의 사고 작용을 변형시켰던, 모든 제한된 생각을 조정하기 위하여, 돌아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이 지상의 물질적인 양상들을 더 많이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신은 그보다 더 많이 변형을 경험했고, 한계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어 갔다. 그렇게 하여 이 본보기 세상에서, 환생이 반복되기 시작하였다.

신들이 인간으로서 삶의 모험을 계속하기 위하여, 이곳에 자꾸 자꾸 되돌아오면서, 점점 이 세상이 그들의 삶의 전부가 되었고, 그러면서 그들은 그들의 계보와, 신성을 잊어버렸다. 더 이상 신을, 모든 생각인 ‘총체’로 인식하지 않았다. 비록 그들이 원한다고 해도, 이제 그들은 순수한 생각, 무한한 존재의 세상, 즉 태초부터 그곳에서 그들이 표현해 왔던, 의식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지식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제한된 세계, 제한된 생각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합리화했다. 그래서 의식이 표현해 내는, 또 다른 세상도, 소위 말하는 ‘제한된 천국‘, 제한된 세계로서,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세상에서 가장 장엄하고, 단순한 것을 잊어버린 실체들은, 육신이 죽으면, 그들의 행복과 집합적 태도인 생각에 따라,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신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이 신성하고 불사한다는 것과, 모든 전능과 전지가 진실로 들 안에 있음을 알지 못하게 되자, 주변에 널려 있는 에고에 물들기 시작하였다. 곧 이어, 그들은 신비한 힘과, 지식의 광대한 자료를 이용하여, 자신들만이 신을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 다른 이보다 자신을 더 높이 올리려고 애쓰는, 실체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인간이 두려워하며, 떼를 지어 다니기를 좋아하는 피조물이 되자, 예지자나 예언자, 계시자가 나타나, 파괴와 멸망을 예언하면서, 자신의 권능을 강화시켜 나가는 데 혈안이 되었다.
예지자는 자기가 말하는 것에, 사람들이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저주와 파멸의 협박을 가했다. 이렇게 하여 이 지상에 종교가 탄생하였다. 종교는 인간 내면의 아름다움, 영원한 신격으로부터 인간을 더욱 분리하였다. 종교는 매우 영악했다. 사람을 칼로 지배하거나 다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종교는 오직 신에게는 도달할 수 없다는 가르침, 즉 전지함과 전능함은 인간에게 불가하다는 가르침만을 계속했다. 그런데 영혼은 영원한 기억을 갖는다. 영혼은 모든 생의 모든 경험을 기억한다. 무엇이든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면, 아무리 변형된 이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에 확고한 현실이 될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신성하지 않다고 자주 듣게 되면, 그것이 확고한 믿음이 되어 버린다. 귀 여린 진실의 탐구자인 인간은, 따돌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그토록 어리석은 말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한 사람에게, 신은 그의 밖에 있으며, 그는 비천하고 영혼이 악하다라고, 충분히 오랫동안 말한다면, 그 생각은 그의 영혼의 기억 속에 견고하게 각인된다. 그러고 나면 달라지기가 매우 어렵다. 이것이 실제로, 이 지상에서 수천 년 동안 일어났던 것이다. 이렇게 단순한 실체들은,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번갈아 가면서, 이와 같은 가르침의 지배를, 계속적으로 받아왔다.
그들은 그 이해에 맞추어져, 자신은 사악하고, 신은 자기 존재의 밖에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 자신은 신성과 거리가 멀다고, 믿어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신을 아는 유일한 길이자, 신에게로 돌아가는 길은, 예언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종교단체의 계율을 따르는 것이라고 알게 되었다. 인간이 자신의 앎이, 진실의 근본이라는 것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을 때, 그는 자신의 주권과 힘을 포기하고, 대중 집단의 일원이 되었다. 종교와 정부가 오랜 세월 동안, 대중들을 획일적으로 지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획일적이지 않다.  모든 인간은 모험을 경험하는 독특한 신들이다. 인간은 각자의 모험을 할 자격이 있다.

인간이, 자신을 사악하고 죄인이고, 신은 자신의 밖에 있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었을 때, 그는 자신을 신에게서 완전히 분리시켰다. 그러한 이해와 믿음을 받아들이는 바람에, 인간이 육신을 빌어 계속해서 태어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인간이 그 자신은 신성함과는 거리가 멀고, 신은 그의 안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는 한, 그는 수백만 번을 다시 태어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 존재의 상태에서, 다시 한 번 자신의 신성과 삶을 실현할 때까지.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은, 결코 덫에 걸려드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단지 참여하는 게임이며, 창조성과 생명을 탐구하는 새로운 모험이었다. 그러나, 당신은 육신의 감각 때문에 자신을 너무 쉽게 잊어 버렸다. 그래서 당신으 몸이 당신 정체성의 전부가 되어버렸다. 이 세상의 물질에 너무 집착함으로써, 당신은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끼며, 쉽게 흔들리는 인간이 되어 버렸고,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신 안에 있는 힘의 근본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그리하여 죽음은 배웠지만 삶은 잊어버렸다. 슬픔은 배웠으나, 기쁨을 잊어버렸다. 인간을 배웠으나, 정작 신은 잊어버렸다.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든, 그 환상을 창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그 지고의 지성을 잊어버린 것이다. 당신들은 모두 이 지상에서 여러 삶을 살았다. 삼만 번을 산 이도 있다. 어떤 이는 일만 번을 살았고, 또 어떤 이는 두 번만 산 이도 있다. 이와 같이 여러 번 살았고 죽었다. 이 지상에서 살아가는 삶은, 단지 생명이라는 것을 찾아가는 모험으로서, 한갓 꿈이고, 게임이며, 환상이지만, 그러한 삶들은 당신을 타락시켰다. 몹시. 그렇게 많은 삶을 사는 동안, 당신의 가족이나 사회, 종교, 그리고 정부 권력은, 당신은 비천하고, 신은 당신이 다다를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고, 당신에게 주입시켜 왔다.
그래서 이것이 당신의 사고 과정에서, 확고한 현실이 되어 버렸다. 지금까지도 당신들 대부분은, 신이 자신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하여 스승이나 종교, 그리고 그밖에 다른 사람들이, 당신 삶을 지배하고, 진리를 해석하도록 만든다. 당신들은 오래 전부터 전해져 온 진실, 즉 신과 천국은 참으로 당신 안에 있다는, 단순한 진실을 남들이 복잡하게 만들고, 어지럽게 흩뜨려 놓도록 만들었다. 이보다 더 위대한 진실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신과 연결되기 위해서, 또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교리를 따르거나, 특정한 ‘수단들’, 즉 의식이나 기도, 음송, 단식, 명상 등을 행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당신은 자신을 영혼에게, 당신이 되고자 하는 그것은, 아직 되지 못했고, 당신이 찾고 있는 신의 사랑이나 지식과는, 동떨어져 있어서,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매우 어려운 일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고 확신시킨다.

종교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종교적 가르침을 세우고, 그것을 발전시킨 이들은, 당신이 사랑하는 형제들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신성과 가치와 힘 등을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형제를 노예화하였다. 결국 그 자신을 노예화한 것이다. 그들이 한 일은, 그 자체가 해로운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경험하고 이해한, 진실이 되어 버렸다. 선지자나 성직자일지라도, 나는 이 모든 이를 사랑한다. 그들도 신이기 때문이다.

의식을 행하고 교리를 따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결코 완전히 옳다고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내면의 소리, - 그것은 신이다 - 는, 당신은 이미 당신이 도달하려고 애쓰고 있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나는 단지 더 좋은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기 위해서, 이곳에 돌아왔다. 그리고 당신은 이미, 신이라는 것을 말해 주려고 왔다. 당신은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아무 것도 잘못한 것이 없다. 불쌍하지도 비천하지도 않다. 죄인도 아니다. 놀랍도록 어리석은 생각인 악마라는 것도 없다. 이러한 모든 것을 깨닫고 나면, 이제 당신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이것이 신의 모습이다.
신은 신성한체하지 않고, 시름에 잠기지 않으며, 우울하고 광적인 창조자가 아니다. 본질로서 완전하고 무한한 기쁨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신은 당신의 내면에 있다. 신은 당신의 모든 생에서도 그래 왔다. 당신은 이미 신이다. 그는 당신 존재의 공간 안에 자리잡고 있는 신성한 창조 지성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제한을 경험하고 있을 때에도 당신을 사랑했고, 당신이 다시 무한으로 돌아올 때에도 당신을 사랑할 근본이다.
 

제한은 하나의 모험이었다. 제한은 하나의 경험이었으며, 이 지상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절실하게 경험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무엇인가 더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제한을 삶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무한한 사고로, 자신의 육신과 전 우주, 그리고 차원을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다면, 결코 다시 제한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알고, 모든 생각을 받아들이고 포용한다면, 당신의 가장 원대한 꿈을 능가하는, 기쁨과 평온을 이 삶에서 얻게 될 것이다.생각이 궁극의 창조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것을 느끼도록 허용하면, 그것은 당신 인생의 현실이 된다. 제한된 사고 영역을 넘어서는, 모든 생각을 포용한다면, 그 생각은 발현되어, 당신 삶을 넓히고 확장시킬 것이다. 필요한 것은 당신의 사고과정을 넓혀서, 더 무한한 생각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유한한 인간을 넘어서, 무한한 신이 될 수 있도록.
자신이 비천하다고 앎으로써, 그렇게 되어 버린 것처럼, 이제 당신 존재가 신이라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당신 전체로 신이 될 것이다. 순수 생각의 일곱 번째 수준의 이해 상태, 즉 존재의 궁극적 상태, 만물의 궁극적 힘인 상태로, 당신이 돌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단 한 가지는, 신이 당신 안에 살아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신이라는 기억이, 당신 존재의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영혼 속에서 잠자고 있으면서, 언젠가 깨워지기를 기다리며, 현실로 경험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알기만 하면 그렇게 된다. 당신이 신인 것을 알 때, 그 느낌을 확신함으로써,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고, 당신에게 가르쳐줄 경험과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아무도 당신에게 깨우쳐줄 수 없다! 직 당신만이, 당신 자신의 사고과정과 감성에 의하여, 그 이해를 성취해 나갈 수 있다. 당신과 신이 하나라는 것을 안다면, 분리하는 태도를, 당신의 사고방식에서 제거하고, 당신은 다시 신격과 하나가 된다. 큰 지혜와 전지한 신의 지성이, 생각의 전체이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본임을 깨닫고, 전체 생각이 되도록, 자신을 허용한다면, 당신은 신 전부, 즉 모든 것이 된다. 그때 당신은 당신의 자유와 위대함과 영광을 되찾는다.

다시 또 이 천국에 돌아올 필요가 없이, 더 광대한 천국으로 가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더 웅장한 모험을 계속할 수 있다. 단언하건대, 당신이 이 지상에서 성취해야 할 것은, 본연의 당신으로 존재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당신이 신이라는 앎은, 존재의 상태에서 성취되기 때문이다 - 신은 존재(Being)이며, 모든 생명의 있음(Isness)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상태에 있다는 것은, 당신이 누구이고 또 어떻게 표현하든지, 당신 자신을 허용하는 것으로서,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렇게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한 순간에 성취할 수 있다! 한 순간에 깨달을 수 있다.

신은 바로 현재이다. 무한도 바로 현재이다. 영원한 신이 되는 길은, 바로 지금 이 순간으로, 온전히 영원을 사는 것이다. 이것이 신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단순히 존재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생명의 있음, 그리고 지속성과 하나가 되고, 당신의 몸은 스스로 고양되어, 지속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당신은 죽을 필요가 없고, 모든 세상을 초월하여, 일곱 번째로 갈 수 있다. 이곳은 모든 것의 종착점인 생각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인간은 제한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 의문을 가지고, 왜 자신들은 정부나 교리, 사회의 위선에 노예가 되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이 지상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한된 의식의 장벽을 넘어서, 그것을 초월할 정도로, 충분히 자신과 남들을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다. 인간을 오랫동안 지배해 왔던, 예언과 종말론, 모든 종류의 두려움은 일어나지 않고 있음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그것들을 벗어나 살아 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신을 사랑해야 된다면, 왜 그들은 신을 무서워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다. 이 지구상의 의식은 변하고 있다. 인간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라고 간주하게 만들었던, 제한된 이해가,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 오면서, 인간을 본래 신인, 지고한 근본으로 인정할 수 있을 만큼, 향상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배움이 일어나야 할 때이다. 그것은 사실,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신의 영혼 깊은 곳에서, 당신은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다. - 그 진실이 당신으로 하여금, 정체해 있는 독단적인 믿음과 이해를 넘어서, 항상 존재해 왔던, 생각의 천국을 볼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올가미가 당신의 목덜미에서 풀리고, 당신의 영혼 안에서, 기쁨의 느낌이 확연해지면, 당신은 당신의 본래 모습인 위대한 신이 되기 시작할 것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육신의 시대였다. 새로운 시대는 벌써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이 시대를 빛의 시대, 순수 영성의 시대, 의 시대라 한다. 이 시대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천국이 자신 안에 항상 있어 왔음을, 깨닫는 시대이다. 빛의 시대는 인간을 무한한 생각으로, 되돌려 놓는다. - 사랑과 기쁨, 그리고 존재의 자유가 있는, 지고한 왕국으로, 새로운 왕국을 살아갈 이들은 전쟁영웅이나, 폭군이 아닐 것이다. 한계의 속박을 벗어나, 평화를 알리는 선구자로서, 이렇게 말하는 이들이다. “나는 신이다. 내가 보는 모든 것을 사랑한다.
나 자신이 내가 보는 모든 것이고, 나는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해에까지 도달한 이들은, 그 자신의 빛 하나만으로도, 전체 의식을 향상시킨다. 한 사람씩 차례대로 당신들은, 다가오는 내세에 더욱 현명한 창조를 할 수 있도록 해줄, 지혜의 진주들이 가득한 무한의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이 지상에서 당신이 지금 살고 있는 삶은, 거대한 환상이다. 이것은 커다란 꿈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 꿈에서 깨어나, 배우고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신을. 모든 이들이 그렇게 할 것이다.  어느 날 당신은, 구름 낀 하늘을 쳐다볼 것이다. 그리고 그 하늘을 쳐다보면서, 눈부신 빛들이 여기 저기에서 반짝이는 것을 보며, 별들이 내려와서 구름 속에 둥우리를 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이 보는 것을, 온 인류가 다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잠들어 있는 당신을 깨워, 내가 당신에게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이, 참으로 위대한 진리이고, 경이로운 현실이라는 것을, 당신이 깨닫도록 도와줄 것이다.

마스터 : 우리가 어떻게 신이나, 태초에 우리를 결속시켰던 것들로부터 분리되었는지, 알고 싶다. 어떻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가?
람타 : 태초에 당신들 각자는, 신과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신의 에고, 당신의 정체는 ‘유일하고도 독특한 신’이었고, 삶은 모든 생각을 경험하기 위한, 감동적인 모험이었다. 신은 모든 생각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에고는 순수했고, 변형되어 있지 않았다. 당신의 존재 안에, 생각, 혹은 신을 수용하는 것을 제한하는, 어떤 태도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존재하는 지금 순간에 영원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신으로부터 생각을 받고, 감성으로 변환시켜서, 그 감성을 창조성으로 발현하는 능력에 제한을 받지 않았다. 당신들 모두 어린이와 같았다. 존재의 순수성을 깨뜨리거나, 표현을 제한하는 어떤 태도도, 가지지 않았던 것이다. 당신들은 두려움을 알지 못했다. 더 낫다거나 못하다는 판단을, 알지 못했다. 경쟁이나 질투라는 것도 알지 못했다.
죽음도 알지 못했다. 이러한 태도들은 그 어떤 것도 창조하고,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들은 어린아이들과 같았다. 당신들, 신들은 태초부터 생각의 감성을, 창조적 형상으로 창조하고 표현하려는, 강한 충동을 가졌다. 그럴 수 있는 힘이 누구에게는 좀 많이, 누구에게는 좀 적게 주어지지 않았다. 모두가 동등하였다. 러나 창조하기를 시작하자, 경쟁심이 당신들 사이에 일어났다. 다른 이의 창조적인 생각을 취하여, 더 위대한 무엇으로 확장하려는 욕구가 생긴 것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여, 또 창조해 내고… 왜 지상에 그렇게 많은 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한 가지 장미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어떻게 그 많은 나비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왜 신들은 경쟁적인 경주를 시작하게 되었는가? 창조하려는 노력을 하면서, 자신의 창조성은, 다른 이의 것처럼 대단하지 못한 것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기 존재가, 뒤떨어져 있다고 보기 시작하였다. 그 부족한 느낌을 채우기 위해, 신들은, 다른 이의 창조를 뛰어 넘으려고, 시도하였다. 그들의 사고 과정이, 경쟁적인 창조성에 휩쓸릴수록, 점점 더 그들은 있음의 완전함에 비하여, 그들 자신을 훨씬 모자란 것으로, 보게 되었다.
 
모든 것의 평등함인 신으로부터, 분리되면서…알겠지만, 생명으로부터 나온, 분리와 ‘불완전’이라고 하는 이해는, 항상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보게 될 때만 생긴다. 삶의 현실에서 보면, 아무 것도 낫거나, 못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은 그저 존재할 따름이고, 있음에 있어서 평등하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완전한 상태에 있다. - 더 적절하게 표현하면, 있음의 상태, 존재의 상태에 있다. 어떤 것을 진정한 있음의 완전함보다 못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마음가짐, 집합적 생각인 것이다. ​그러니까, 당신의 인간의 육신으로 들어왔을 때, 당신은 심하게 분리되었다. 비록 자신을,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해 나가고는 있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당신은, 자신의 신성과 존재의 불사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신을 낮추어, 육신으로 들어가고, 세포물질 수준의 현실을 경험하기 시작하면서, 당신은 배고픔과 추위, 생존 같은 ‘물질적 기능’에 얽매이게 되었다. 육신을 갖게 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한, 투쟁인 것이다. 그때부터 세포물질과 뒤섞이게 되었다. 그런데 그 세포물질은, 처음부터 육체가 생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된 것이다.
이렇게 불사의 존재가 육체의 메커니즘과 합쳐지게 되면서, 육신의 생존에 매달리게 되었다.
존재의 에고 상태가, 극심하게 변형되어 버린 것이다. 이때에 ‘앎의 나무’, 변형된 에고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것은 이 지상에 있는 두려움과 경쟁심, 질투 같은 감성을 경험한 것으로서, 당신의 영혼에 기록되고 몸의 세포구조물에 프로그램 되었다. 그리고 변형된 에고를 더욱 강화시켜, 자신이 신성하고 불사하며, 모든 생명과 하나라는 앎을 변형시켜 나갔다.

마스터 : 자신이 영원한 것을 아는 신들이, 왜 자신들은 죽는다고 믿게 되었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먼저 그들은, 어떻게 죽음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게 되었는가?
람타 : 그들은 자신이 창조한 것들(동식물)로부터 변화의 과정, - 죽음이라고 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였다. 알다시피 이곳에 창조된 많은 것들은 서로의 먹이가 되도록 짜여졌다. 창조물이 자신을 보존하는 데 필요한 물질은, 그 자신과 같은 물질이어야만 했던 것이다. 이것을 당신들은 ‘먹이사슬’이라 한다.

이렇게 하여 꽃은 신들이 창조한 동물의 먹이가 되었다. 물이 식물을 먹어 버릴 때, 식물을 창조한 신들은, 끔찍스럽게도 자신이 창조한 피조물이, 눈앞에서 분해되고, 다른 에너지로 전환되어 버리는 것을 보았다. 초식동물들은, 다시 다른 신들에 의해 창조된, 육식동물의 먹이가 되었다. 계속 이렇게 진행되었다.
이것이 신들이 경쟁하기 위하여 선택한, 한 방법이다. 알다시피 당신이 창조해 놓은 피조물이, 다른 신들이 창조한 피조물에게 먹히고, 소화되도록 하는 것은 대단한 치욕이었다. 인간이라는 육신을 설계하고 진화하게 하는 과정에서, 죽음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인간이라고 하는 피조물을 완전하게 만들기 위하여, 신들은 그 인간의 일부가 되었다.
그들이 여기에 창조한 다른 모든 것들의 일부가 되었던 것처럼… 초기에 창조된 인간은, 그다지 잽싼 피조물은 아니어서, 짐승들은 계속해서 인간의 몸을 먹이 감으로 취하였다. 인간의 고기 맛이 괜찮은 것을 안 것이다! 그렇게 되면서, 신들은 죽음이라는 행위를 경험하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이해를 얻고 나자, 그 육신을 개선시켜, 자신이 먼저 창조해 놓은 피조물인, 육식동물의 발톱에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더 강하게 만들었다.

이제 신들이, 자신의 존재 바깥에 있는 신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한 것은, 이 지상에 애착을 갖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그들이 이 곳에 창조한 모든 것을 경험하고 상호작용을 하고 싶어 하면서부터이다. 신들은 식물이었고 동물이기도 하였다. 곤충이기도 하였다. 그들은 모든 것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지배할 형상을 가지는 것, 그것이 자신들의 궁극적 사랑이고 창조행위였다.

​신들이 결국 그 자신을 남자와 여자로 형상화하고, 그들의 모든 주의력을, 자신의 창조물들을 능가하고, 그것들로부터 당하게 될 화를 모면하는 데, 집중하였을 때, 그들의 생명은 변형 상태가 되어갔다. 우스꽝스럽게도, 신들이 그들을 먹이로 취하는 짐승들에게서 벗어나기는 했으나, 그들의 의식을 빼앗아가기 시작한, 생존을 위한 태도로부터는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그들의 육신을 쓰러뜨린 것은, 생존을 위한 태도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무엇인가를 두려워하면, 그는 그렇게 되기 때문이다.

신들이 창조한 모든 것 중에서 두려움이라고 하는 창조물만큼 파괴적인 것은 없다. 어떤 것도 이 두려움의 그림자 속에서 생명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신들이 인간으로서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서, 그들에게 유일한 현실이자 욕구는, 이 물질의 낙원을 계속하여 경험하고, 이 왕국에서 성취하기 위해, 더 많이 창조하는 것이었다. 신들의 자부심은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들은 점점 더, 좋아지고 싶은 안달이 나서, 자꾸 돌아오게 되었다. 자신에게서 찾아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창조성을, ‘더 나은’ 것으로 이곳에서 표현하기 위해서, 돌아오는 것이다.

‘더 나아’지려는 태도와 욕구에 따라, 이 물질계에 너무 깊숙이 빠지게 되면서, 자신의 신성불사인 본성을 잊어버리고, 죽었거나 죽어 가는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모든 생명과 하나가 된다는 이해는, 불행하게도 창조를 구상하면서, 잃어버리기 시작하였다. - 신들이 이 지상에 집착하기 이전부터, - 경쟁심 때문에, 그리고 ‘더 위대한 것’, ‘더 나은 것’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이것을 말해 둔다. 마스터, 하나됨은 오직 한 순간이다. 한 숨만 들이키면 된다. 당신의 존재 깊은 곳에서, 당신이 다른 어느 것과도 분리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전체 생각으로부터, 당신을 분리한 것은, 단지 당신의 태도이자, 당신의 제한된 생각이고, 당신의 변형된 정체성이다. 생각에 대한 판단을 제거해 버리고, 전체 생각으로 돌아오게 되면, 당신은 이제 결코 길을 잃거나, 분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당신은 신과 합일을 이루기 위한 길을 찾는,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될 것이다.

마스터 : 람타, 우리는 실제로 완전하고, 우리가 바로 신이며, 우리는 영원히 산다는 것을 나는 이해한다. 그러나, 이렇게 이해한다고 해도, 나는 조심해야 하고 나 자신을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때때로 느끼는 이 느낌은, 줄어드는 것 같지 않다. 내 자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이 환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는가?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이러한 느낌은, 참된 나를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다.

람타 : 마스터 당신도 알다시피 동물한테도, 자기 보존이라는 경이로운 능력이 주어져 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원시적 본능으로, 세포 구조 안에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 그들은 살아가고, 경험하고, 진화할 수 있었다. 인류도 또한 원시적 본능이 있으며, 이것은 유전으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인간의 생존에 대한 본능은, 몸의 세포 구조에 들어 있어서, 그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인간은 아무런 보호체도 없이 알몸으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은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뿔도 없으며, 발이 재빠르지도 않다. 손이 빨리 움직이지도 않는다. 청력이 뛰어나지도 않으며, 시력이 탁월하지도 않다. 인간은 매우 섬세하고 뛰어나며, 자족하는 실체로서, 자기 보존을 위한, 가장 훌륭한 본능은, 조심하는 것과 숨는 것이다.
인간은 그러한 본능을 갖추고 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실제 모습인, 경이롭고, 생각할 줄 알고, 진화하며, 창조적인 육신을 갖출 때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당신도 물질의 밀도를 경험하기 위하여, 영혼의 자유를 보류하는 쪽을 선택하였으며, 이에 당신은 유전적이고 본능적인 정형으로, 빚어지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표현하기 위한, 하나의 조건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두려워하고, 집단을 이루며, 의심하고, 매우 조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조심하는 것은 환상이 아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인간으로 살아가는 조건이다. 이러한 필요성은 결코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육신을 보존하기 위해서, 필요한 본능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이해를 한 단계 더 넓혀 보자. 조그맣고 경이로우며, 창조적인 불꽃인 당신이, 이곳에서 진화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당신의 몸이 당신을 보호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면, 이제, 당신은 육체를 넘어서, 영성과 영혼의 불사의 영역으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당신이 그렇게 하려고만 한다면, 이제는 당신의 영성이, 당신의 몸을 제어하고, 보호할 때마다, ― 생각의 무한함을 이해함으로써. 지금 해야 할 일은, 당신 자신인 신이 되는 것이다. 굳건하고… 확고하며… 자주적인 존재… 유아독존의 자신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극복해야 할 유일한 환상은, 그렇게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그 환상을 지워 버릴 수 있는가? 단순히 당신의 사고과정에서 그것을 지워버리면 된다. 당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은 모두 현실이다. 이 차원에서 결코 현실로 발현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다. 당신이 신이라는 생각을 한번 포용하기만 하면, 유아독존의 원리로, 당신은 이미 그렇게 되어 있다.

당신의 실체를 사랑하라, 마스터. 자신을 사랑하라! 당신은 영원하고 자신이 곧 신임을 알라. 이를 알라! 이를 느껴라! 이 생각을 포용하라. 오랫동안 당신을 보호해 왔던 본능적인 천성이, 당신은 죽는 것이 아니라, 불사라는 앎과 마주치게 되면, 그리고 당신은 한정된 인간이 아니라,
무한한 신이라는 앎과 직면하면, 당신의 영혼은 이 무한의 생각을 육신의 세포체에까지 전해 주게 되며, 세포체는 환호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몸은, 그 안에 거하는 위대한 신이 가지는 무한한 생각과, 기꺼이 조화를 이룰 것이다. 당신의 몸이 본능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불확실성과 조심성을 가지게 된 것처럼, 이제 그 자신의 세포에 무한한 신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로 이루어진 몸이, ‘나 자신인 신’ 전체와 연합하여, 하나가 될 수 있다.
‘당신다워지려면’, 마스터, 단순히 당신이 느끼는 불확실함의 경계를 넘어서라. 그리고 육신에 의해 보호받던 당신이, 당신이 이해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면, 당신의 몸은 흔쾌히 따를 것이다. 마스터, 당신 자신을 사랑하라. 완전하게! 삶을 사랑하라 ― 생명 전체를!
이렇게 할 때, 당신은 합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확신하건대 태도만으로 한 순간에 그렇게 된다.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 그저 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