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판단을 할 자격은 없다.
피부색도
행동도
다른 그 무엇도
당신을 있음의 상태,
하느님의 지위에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이 누구이든,
그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든,
그들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들 내면에 있는 하느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랑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미래에 그들이 행할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그들이 존재하므로,
그들이 누구인지 개의치 않고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되도록 한다면
당신은 항상 순수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의 사고 작용에서 판단을 제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당신의 느낌들과
그 느낌을 낳는 생각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러한 것들을 인식함으로써,
당신은 더욱 정제된 상태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르칠 것이다.
불행이나 슬픔, 분노, 두려움, 조급함, 외로움
-그 밖에 좋지 않은 느낌들 -을 느낄 때는,
당신의 생각을 살펴보라.
당신은 곧 당신의 변형된 생각
- 당신이나 남을 판단하고,
외양이나 크기로만 생명을 보는 -과
당신의 불쾌한 감정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점점 당신이 이러한 느낌들에 싫증을 냄에 따라,
당신은 생명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던 판단을 제거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을 정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리고 더 무한한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서 경험될 있도록 허용함에 따라,
당신의 무한한 생각과
평화, 기쁨, 조화, 가뿐한 몸놀림 등,
이러한 느낌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결코 판단하지 말라!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단지 당신에게 가르침을 줄
당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인식하도록 허용하라
왜냐하면, 확신하건대,
그것들은 그러한 것이므로
창조된 그 모든 단어 중에,
이러한 가르침에 가장 잘 부합되는 말이 하나 있다.
- 그것은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존재!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이 어떠하든지,
당신 자신을 허용하고
그런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 감성에 따라 사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하게 살아가는 전부임을 알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순간에 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다.
당신은 영혼이 당신에게 추구하기를 재촉하는 모험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당신은 결코 자신이나 남,
혹은 당신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옳고 그름도 없고,
가능 불가능도 없으며,
완전함이나 불완전함,
긍정이나 부정도 없다.
지금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환영은 더 이상 없다.
당신이 존재의 상태에 있을 때,
생명의 있음과
이 순간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존재의 상태에서는,
과거나 미래에도
당신의 생각이 더 이상
죄의식이나 후회, 의무감이나
도리에 얽매여서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존재함으로써,
당신은 모든 진실을
있음으로 간주하고
당신 존재의 상태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각각의 진실을 탐구해 나간다.
그렇게 살아갈 때,
당신의 뇌를 통하여
당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다 숙고해보고,
당신의 몸에서 느낌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앎,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있음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존재할 때,
당신은 모든 것의 있음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조화를 통하여,
당신이 원하는 것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존재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가 없다.
당신 존재의 하느님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당신에게로 끌어올 것이다.
또한 그것이 다가올 것이다.
외향적인 신념을
실행해 보느라고 바쁜 사람들은
내면적인 것을 비웃는다.
있음으로서,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존재하고,
그리고 모든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허용할 때,
당신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때에는 당신이 그토록 알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알게 될 것이다.
당신 생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당신 영혼 속에서
감성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허용할 때,
당신은 무한한 신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단지
있음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향하여 열려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하느님
본성으로의 순수한 통로가 되며,
당신은 순수한 하느님
마음의 단순함에 더 가까워진다.
알아가며 허용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변형된 에고를 비래하게 된다.
그 때 당신은 일곱 번째 수준,
일곱 번째 막,
일곱 번째 천국을 지배하게 된다.
이 일곱 번째에는 판단이라는 것이 없다.
오직 생명의 지속적인 있음만이 있다.
일단 판단을 지배하게 되면,
당신은 이 세상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몸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뇌가 완전히 몸을 복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
((뇌가 완전히 기능을 하면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몸을 망가뜨리려고 서두르지 말라.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
몸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영양을 공급하고 부드럽게 다루어라.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생명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순수한 표현수단이다.
당신의 사고 작용에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라.
또한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체를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해라.
당신이 여성이라면, 여성답게 되라.
남성이라면 남성다워지라.
당신 그대로를 사랑하라.
당신의 몸을 남용하지 말라.
결코 손상하거나 더럽히지 말라.
몸이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하도록 시키지 말라.
당신 존재의 웅대함을 보라.
당신 자신을 신성하게 지켜라.
당신피부에 가장 좋은 곳을 입혀라.
당신 몸에 기름을 발라라.
향수를 뿌려라.
몸이 원하는 것만 섭취하라.
몸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인다면,
그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해 줄 것이다
해로운 것을 몸속에 넣지 말라.
해로운 것이란 당신이 해롭다고 아는 것이다.
당신의 뇌에 산소 부족을 일으키는 것들은
모두 많은 수의 뇌세포를 파괴한다.
그러면 그 뇌세포는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
뇌는 자신의 뇌세포를 재생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뇌 세포가 파괴되면,
생각이 당신 몸에서
감성으로 실현되도록 해주는 기능이 약해진다.
생각을 숙고 할 수 있지만, 당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기쁨이 끝나는 순간이다.
생각을 느낌으로써 그것이 될 수 없다면, 어떻게 생각으로 즐거울 수 있겠는가?
당신이 느낄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앎을 축적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점이 환상을 일으키는 약물이나
‘담배’ 같은 것을 취했을 때,
당신의 뇌에 가해지는 해로움이다.
그러한 것들을 취할 때마다 당신의 뇌에서 산소가 제거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기분이 고조 된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뇌의 죽음이다.
이렇게 할 때마다 당신은
자신의 아는 능력을 제한하게 된다.
울 수도 웃을 수 없는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존재 안에
이제 더 이상을 감성을 창조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앎을 경험하는 것,
그리하여 당신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눈물을 글썽일 수 있다거나
또는 태양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며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휘로움을 아는 것은,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생각을 느낌으로 풀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황홀’이라 한다.
이것이 진짜 ‘최고 기분’이다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고,
당신이 살아온
그 모든 생에도 당신과 함께 있었고
당신의 몸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초탈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할 이,
그는 바로 당신이다.
그는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겪어 온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한결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이가 바로 당신이다.
자신을 포옹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당신의 버팀목으로 삼을 때,
당신은 인간의 사회의식에서
하느님의 전체의식으로 초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본질은
법과 교리, 사회의식의 속박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넘어서고 완전함을 능가한다.
운명을 개척하고, 자아충족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충족인 것이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있음의 눈으로 볼 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이러하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며,
당신이 자신에게 알도록 하는 그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종말이 없고,
어떤 것에도 절대성은 없다는 것을 알라.
모든 것은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더 많은 것이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더 위대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대한 진실도 있다!
그것을 알라.
그러면 당신의 수용상태에 따라,
그것이 당신에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결코 당신 자신을 노예가 되게 하거나
위협을 당하게 내버려두지 말라.
항상 방법이 있고, 또 나은 길이 있다.
그것을 알고, 기쁨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줄 생각이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라.
당신의 한계에 부딪쳐라.
그리고 포용하라.
지배하라!
하느님 전부를 아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삶에서 제거하라.
모든 것을 삶에서 제거하라.
앎과 해답, 기쁨이 다가올 수 있도록
죄의식과 판단을 버려라.
두려움에 맞서라.
그리하여 당신 자신이
그 환영의 정체를 벗길 수 있도록 허용하라.
당신 영원하며
당신을 행복과 기쁨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라.
이 세상에서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그 두려움을 제거하라.
왜 당신은 먼 곳에서 이곳을 찾아온 이들을 무섭게 생각하는가?
거대한 우주선에 있는 당신의 형제들은
믿을 수 없으리 만큼 아름답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차원에서 온
다른 실체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두려움을 버려라.
더 위대해지려고 노력할 때,
모법이 될 만한 것을
이 지상에서 찾는다면 당신이 되어 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상에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한정된 사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휠씬 광대한 무언가가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할 것이라고 숙고해야 한다.
진실 앞에 당신을 열어라 - ((그 근원에 상관없이))-
그리고 당신의 느낌이
당신의 안내자가 되도록 하라.
현명한 이는
자신의 영혼 속에서 무엇이 옳게 느껴지는지를 안다.
진실은 당신이 밝고 가는
그 잔디의 잎새에도 있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웃음, 거지의 눈 속에도 있다.
모든 장소에 모든 것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순간에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는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잔디의 잎새 하나도 한 순간의 속삭임도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현명해지는 법을 배우라.
진실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지,
그것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음을 알라.
천국이 자신 안에 있음을 아는 이는
현명한 실체이다.
어떠한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며
당신 영혼 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당신은 천국의 열쇠를 당신 안에 가지고 있다.
즉, 감성이라는 보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느끼는 것을 배우라.
하느님을 완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완전하게 느껴야 한다.
하느님인 모든 생각이
당신 존재의 중심인 당신의 영혼 안에서 느껴질 때까지.
당신의 뇌 전체가
한꺼번에 모두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압박하지 말라.
당신의 뇌로 하여금
생각을 하나씩,
경험을 하나씩,
차근차근 열어나가게 하라.
그리하여 생각 하나하나가
당신 안에서 굳건해 질 수 있도록 하라.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존재하도록 허용하라.
있음으로 해서 당신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단순히 자신의 있음,
유아독존의 원리에 거한다면,
당신은 생명 전체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 때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는 멀어지고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피부색도
행동도
다른 그 무엇도
당신을 있음의 상태,
하느님의 지위에서 변형시킬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들이 누구이든,
그들이 어떻게 표현하고 있든,
그들을 사랑하라.
왜냐하면 그들 내면에 있는 하느님이
그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사랑 받게 되어 있다.
그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은
미래에 그들이 행할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것이다.
그들이 존재하므로,
그들이 누구인지 개의치 않고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리고 그 사랑이 지속되도록 한다면
당신은 항상 순수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의 사고 작용에서 판단을 제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당신의 느낌들과
그 느낌을 낳는 생각들을
인식하는 것이다.
단순히 그러한 것들을 인식함으로써,
당신은 더욱 정제된 상태에서
생각할 수 있도록 자신을 가르칠 것이다.
불행이나 슬픔, 분노, 두려움, 조급함, 외로움
-그 밖에 좋지 않은 느낌들 -을 느낄 때는,
당신의 생각을 살펴보라.
당신은 곧 당신의 변형된 생각
- 당신이나 남을 판단하고,
외양이나 크기로만 생명을 보는 -과
당신의 불쾌한 감정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점점 당신이 이러한 느낌들에 싫증을 냄에 따라,
당신은 생명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던 판단을 제거하기 위하여
당신의 생각을 정제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할수록,
그리고 더 무한한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서 경험될 있도록 허용함에 따라,
당신의 무한한 생각과
평화, 기쁨, 조화, 가뿐한 몸놀림 등,
이러한 느낌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판단을 내리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결코 판단하지 말라!
스스로에게 연민을 느끼고,
단지 당신에게 가르침을 줄
당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인식하도록 허용하라
왜냐하면, 확신하건대,
그것들은 그러한 것이므로
창조된 그 모든 단어 중에,
이러한 가르침에 가장 잘 부합되는 말이 하나 있다.
- 그것은 ‘존재’라고 하는 것이다.
존재!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신이 어떠하든지,
당신 자신을 허용하고
그런 자신을 전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한다.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 감성에 따라 사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하게 살아가는 전부임을 알기 때문에,
존재한다는 것은
그 순간에 완전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이다.
당신은 영혼이 당신에게 추구하기를 재촉하는 모험을 겪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존재의 이유는 무엇인가?
존재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면,
당신은 결코 자신이나 남,
혹은 당신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판단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옳고 그름도 없고,
가능 불가능도 없으며,
완전함이나 불완전함,
긍정이나 부정도 없다.
지금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끼지도 못하게 하는
시간이라는 환영은 더 이상 없다.
당신이 존재의 상태에 있을 때,
생명의 있음과
이 순간의 연속만이 있을 뿐이다.
존재의 상태에서는,
과거나 미래에도
당신의 생각이 더 이상
죄의식이나 후회, 의무감이나
도리에 얽매여서 우물쭈물하지 않는다.
존재함으로써,
당신은 모든 진실을
있음으로 간주하고
당신 존재의 상태에
적용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각각의 진실을 탐구해 나간다.
그렇게 살아갈 때,
당신의 뇌를 통하여
당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생각을 다 숙고해보고,
당신의 몸에서 느낌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더 많은 앎,
더 많은 생각,
더 많은 있음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된다.
단순히 존재할 때,
당신은 모든 것의 있음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조화를 통하여,
당신이 원하는 것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당신은 존재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필요가 없다.
당신 존재의 하느님이 당신이 생각하는 것,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라도
당신에게로 끌어올 것이다.
또한 그것이 다가올 것이다.
외향적인 신념을
실행해 보느라고 바쁜 사람들은
내면적인 것을 비웃는다.
있음으로서,
당신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고
모든 것이기도 하다.
단순히 존재하고,
그리고 모든 생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허용할 때,
당신은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때에는 당신이 그토록 알고자 했던
그 모든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알게 될 것이다.
당신 생각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이 당신 영혼 속에서
감성으로 발현될 수 있도록 허용할 때,
당신은 무한한 신으로서 살아갈 것이다.
단지
있음과 존재하는
모든 것을 향하여 열려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의 하느님
본성으로의 순수한 통로가 되며,
당신은 순수한 하느님
마음의 단순함에 더 가까워진다.
알아가며 허용하면서 사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당신은 변형된 에고를 비래하게 된다.
그 때 당신은 일곱 번째 수준,
일곱 번째 막,
일곱 번째 천국을 지배하게 된다.
이 일곱 번째에는 판단이라는 것이 없다.
오직 생명의 지속적인 있음만이 있다.
일단 판단을 지배하게 되면,
당신은 이 세상 전체를 지배하게 되고,
원하는 때에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의 몸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뇌가 완전히 몸을 복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
((뇌가 완전히 기능을 하면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다))*
몸을 망가뜨리려고 서두르지 말라.
당신의 몸을 사랑하라.
몸에게 친절하게 대하라.
영양을 공급하고 부드럽게 다루어라.
그것은 이 세상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생명을 경험하도록 해주는 순수한 표현수단이다.
당신의 사고 작용에 제한을 받지 않도록 하라.
또한 당신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체를 조심스럽게 다루도록 해라.
당신이 여성이라면, 여성답게 되라.
남성이라면 남성다워지라.
당신 그대로를 사랑하라.
당신의 몸을 남용하지 말라.
결코 손상하거나 더럽히지 말라.
몸이 하지 않아야 될 일을 하도록 시키지 말라.
당신 존재의 웅대함을 보라.
당신 자신을 신성하게 지켜라.
당신피부에 가장 좋은 곳을 입혀라.
당신 몸에 기름을 발라라.
향수를 뿌려라.
몸이 원하는 것만 섭취하라.
몸이 말하는 것에 귀 기울인다면,
그 자신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하여
필요로 하는 것을 말해 줄 것이다
해로운 것을 몸속에 넣지 말라.
해로운 것이란 당신이 해롭다고 아는 것이다.
당신의 뇌에 산소 부족을 일으키는 것들은
모두 많은 수의 뇌세포를 파괴한다.
그러면 그 뇌세포는 다시 복구되지 않는다.
뇌는 자신의 뇌세포를 재생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뇌 세포가 파괴되면,
생각이 당신 몸에서
감성으로 실현되도록 해주는 기능이 약해진다.
생각을 숙고 할 수 있지만, 당신에게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된다.
이것이 기쁨이 끝나는 순간이다.
생각을 느낌으로써 그것이 될 수 없다면, 어떻게 생각으로 즐거울 수 있겠는가?
당신이 느낄 수 없다면,
이 세상에서 앎을 축적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점이 환상을 일으키는 약물이나
‘담배’ 같은 것을 취했을 때,
당신의 뇌에 가해지는 해로움이다.
그러한 것들을 취할 때마다 당신의 뇌에서 산소가 제거된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기분이 고조 된다’고 느끼도록 해주는
뇌의 죽음이다.
이렇게 할 때마다 당신은
자신의 아는 능력을 제한하게 된다.
울 수도 웃을 수 없는 시간이 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 존재 안에
이제 더 이상을 감성을 창조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것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앎을 경험하는 것,
그리하여 당신이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눈물을 글썽일 수 있다거나
또는 태양이 솟아오르기를 기다리며
사방으로 퍼지는 그 광휘로움을 아는 것은,
알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생각을 느낌으로 풀어내는 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황홀’이라 한다.
이것이 진짜 ‘최고 기분’이다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당신을 사랑해 왔고,
당신이 살아온
그 모든 생에도 당신과 함께 있었고
당신의 몸이 죽음을 맞이하거나
초탈할 때에도 당신과 함께 할 이,
그는 바로 당신이다.
그는 바로 당신이다.
당신이 겪어 온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도록
한결같이 당신을 사랑하는 유일한 이가 바로 당신이다.
자신을 포옹하고 사랑할 때,
그 사랑을 당신의 버팀목으로 삼을 때,
당신은 인간의 사회의식에서
하느님의 전체의식으로 초월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본질은
법과 교리, 사회의식의 속박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을 넘어서고 완전함을 능가한다.
운명을 개척하고, 자아충족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하느님의 충족인 것이다.
이것이 생명이라는 있음의 눈으로 볼 때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다.
당신은 자신이 이러하다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이며,
당신이 자신에게 알도록 하는 그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그 어느 것에도 종말이 없고,
어떤 것에도 절대성은 없다는 것을 알라.
모든 것은 이 순간에 존재한다.
그리고 항상 더 많은 것이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생각을 제한하지 않기 위해서는
단순히 더 위대한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 위대한 진실도 있다!
그것을 알라.
그러면 당신의 수용상태에 따라,
그것이 당신에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결코 당신 자신을 노예가 되게 하거나
위협을 당하게 내버려두지 말라.
항상 방법이 있고, 또 나은 길이 있다.
그것을 알고, 기쁨으로 가는 길을 밝혀 줄 생각이
당신에게 다가올 수 있도록 하라.
당신의 한계에 부딪쳐라.
그리고 포용하라.
지배하라!
하느님 전부를 아는 데 방해되는
모든 것을 삶에서 제거하라.
모든 것을 삶에서 제거하라.
앎과 해답, 기쁨이 다가올 수 있도록
죄의식과 판단을 버려라.
두려움에 맞서라.
그리하여 당신 자신이
그 환영의 정체를 벗길 수 있도록 허용하라.
당신 영원하며
당신을 행복과 기쁨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라.
이 세상에서 당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아는데 방해가 되는 그 두려움을 제거하라.
왜 당신은 먼 곳에서 이곳을 찾아온 이들을 무섭게 생각하는가?
거대한 우주선에 있는 당신의 형제들은
믿을 수 없으리 만큼 아름답다.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차원에서 온
다른 실체와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도록
두려움을 버려라.
더 위대해지려고 노력할 때,
모법이 될 만한 것을
이 지상에서 찾는다면 당신이 되어 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상에 있는 것일 뿐이다.
인간의 한정된 사고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휠씬 광대한 무언가가 알려지지 않은 채 존재할 것이라고 숙고해야 한다.
진실 앞에 당신을 열어라 - ((그 근원에 상관없이))-
그리고 당신의 느낌이
당신의 안내자가 되도록 하라.
현명한 이는
자신의 영혼 속에서 무엇이 옳게 느껴지는지를 안다.
진실은 당신이 밝고 가는
그 잔디의 잎새에도 있을 수 있다.
어린아이의 웃음, 거지의 눈 속에도 있다.
모든 장소에 모든 것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순간에 있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이는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존재하는 모든 것이며,
잔디의 잎새 하나도 한 순간의 속삭임도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현명해지는 법을 배우라.
진실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든지,
그것에 귀를 기울이라.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음을 알라.
천국이 자신 안에 있음을 아는 이는
현명한 실체이다.
어떠한 생각이라도 할 수 있으며
당신 영혼 안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당신은 천국의 열쇠를 당신 안에 가지고 있다.
즉, 감성이라는 보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느끼는 것을 배우라.
하느님을 완전하게 알기 위해서는
모든 생각을 완전하게 느껴야 한다.
하느님인 모든 생각이
당신 존재의 중심인 당신의 영혼 안에서 느껴질 때까지.
당신의 뇌 전체가
한꺼번에 모두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압박하지 말라.
당신의 뇌로 하여금
생각을 하나씩,
경험을 하나씩,
차근차근 열어나가게 하라.
그리하여 생각 하나하나가
당신 안에서 굳건해 질 수 있도록 하라.
무엇보다도 당신 자신을 존재하도록 허용하라.
있음으로 해서 당신은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단순히 자신의 있음,
유아독존의 원리에 거한다면,
당신은 생명 전체와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 때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자신과는 멀어지고 하느님과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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