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당신의 욕구를 빨리 발현시킬 수 있는가?
앎으로 된다.
안다는 것은 천국이
그 자신의 왕국 안에 있는 풍요로움을 과시해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이다.
욕구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미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이다.
욕구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미 충족된 것을 알면,
그 일은 당신의 욕구에 관한 생각을 증폭시켜서,
오라장을 통하여 의식의 흐름으로 보내고,
당신이 그 욕구를 완결시킬 수 있도록
당신의 욕구를 발현시켜 준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있게 된다.
진실은, 모든 것이 이미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 때,
그것들은 당신에게 유용하게 된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이는 당신이며,
또한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당신의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이 바라는 것을 얻는 방법은
단순히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라 !
앎은 진실이다.
그것은 제공자이고 당신의 미래이다.
당신이 말로 표현할 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질 수 있다.
당신은 입법자이며, 당신이 알고 말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렇게 실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유일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이 구하는 모든 것을 가져도 된다.
지금의 앎으로는,
아직 이것이 진실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앎은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문을 열어준다.
그 깨달음은 생각이 현실로 발현되도록 뇌의 또 다른 부위를 활성화한다.
그리하여 무한한 생각을 실제로 경험하고 나면,
앎이 과업을 행한다는 깨달음이
뇌의 에고 부위에 기억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더 무한한 생각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당신에게 준다.
길게 말하지 않고 몇 마디로 줄여 말한다면 이러하다.
“나는 이제 안다.
난 절대적이다.
나는 완전하다.
나는 하느님이다.
나는 유아독존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이 말들만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가정하거나 믿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라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는 데는 모르는 데 드는 것보다 동일한 사고 작용과 에너지,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필요로 한다.
알라. 그저 알라.
나는 이것이 일어날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알고, 알고, 또 알라!
그것이 전부다.
항상 알라.
만약에 당신은 그렇지 않다거나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결코 모를 것이다.
지금 안다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과 나의 차이점을 당신은 아는가?
나는 내가 무한한 신(神)임을 알고, 당신은 모른다.
그것이 유일한 차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무한한 신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당신의 사회는 당신이 무한한 신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아는가?
앎으로 된다.
안다는 것은 천국이
그 자신의 왕국 안에 있는 풍요로움을 과시해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이다.
욕구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미 보일 수 있도록 해주는 문이다.
욕구가, 그것이 무엇이든지,
이미 충족된 것을 알면,
그 일은 당신의 욕구에 관한 생각을 증폭시켜서,
오라장을 통하여 의식의 흐름으로 보내고,
당신이 그 욕구를 완결시킬 수 있도록
당신의 욕구를 발현시켜 준다.
그리하여 완성된 것을 받아들이는 상태에 있게 된다.
진실은, 모든 것이 이미 당신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들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알 때,
그것들은 당신에게 유용하게 된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는
중심 역할을 하는 이는 당신이며,
또한 원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당신의 능력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당신이 바라는 것을 얻는 방법은
단순히 당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는 것을 알라 !
앎은 진실이다.
그것은 제공자이고 당신의 미래이다.
당신이 말로 표현할 때, 그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알라!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가질 수 있다.
당신은 입법자이며, 당신이 알고 말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그렇게 실재하게 된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된다.
이것이 유일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또한 당신이 구하는 모든 것을 가져도 된다.
지금의 앎으로는,
아직 이것이 진실이라고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앎은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문을 열어준다.
그 깨달음은 생각이 현실로 발현되도록 뇌의 또 다른 부위를 활성화한다.
그리하여 무한한 생각을 실제로 경험하고 나면,
앎이 과업을 행한다는 깨달음이
뇌의 에고 부위에 기억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더 무한한 생각에까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당신에게 준다.
길게 말하지 않고 몇 마디로 줄여 말한다면 이러하다.
“나는 이제 안다.
난 절대적이다.
나는 완전하다.
나는 하느님이다.
나는 유아독존이다.”
다른 말이 필요 없이 이 말들만 있다면,
당신은 더 이상 이 세상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다.
가정하거나 믿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라는 것보다 더 많이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알지 못하는 것보다 아는 것이 얼마나 더 위대한가?
아는 데는 모르는 데 드는 것보다 동일한 사고 작용과 에너지, 얼굴 표정과 몸짓을 필요로 한다.
알라. 그저 알라.
나는 이것이 일어날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안다.”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안다.”
이렇게 알고, 알고, 또 알라!
그것이 전부다.
항상 알라.
만약에 당신은 그렇지 않다거나 그럴 수 없다고 한다면,
당신은 결코 모를 것이다.
지금 안다고 말하라.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과 나의 차이점을 당신은 아는가?
나는 내가 무한한 신(神)임을 알고, 당신은 모른다.
그것이 유일한 차이다.
다시 말해, 나는 내가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무한한 신임을 깨달아야만 한다.
당신의 사회는 당신이 무한한 신이 아니라고 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들이 무엇을 아는가?
그들은 날마다 스스로를 잊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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