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매체(영체)들 각각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차크라 (바퀴라는 의미)라 부르는 특별한 힘 센타들이 있다. 이 센타들은 하나의 매체로부터 또 다른 매체로 힘이 흐르는 연결 초점이다.
우리는 이 센타들을 에텔체 속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에텔체의 표면에 접시 같은 함몰 부분 또는 소용돌이 모습으로 나타난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들은 종종 일정한 육체 기관에 대응하는 것으로 말해지곤 한다. 그러나 에텔 힘 센타는 육체 내부가 아니라 에텔체의 표면, 즉 피부로부터 1/4인치 떨어진 곳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오컬트 능력 계발에 주로 사용되는 센타는 7개이다. 그것들이 위치한 육체 대응 부분은 다음과 같다.
①척추의 기저부 (회음)
②배꼽 (단전)
③췌장 (배꼽 아래와 단전의 중간 위치)
④심장 (가슴의 중심 명치 바로 위)
⑤목 (목 울대 부분)
⑥양미간 (눈썹의 가운데)
⑦정수리 (백회)
몸 안에는 이 밖에도 다른 힘 센타들이 있다. 그러나 백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것들을 이용하지 않는다. 블라바츠키 여사가 언급한 소위 저급 센타라는 다른 세 개의 힘 센타들에 대해 상기하라. 어떤 학파에서는 이 저급 센타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것들과 관련하여 너무도 심각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 센타들을 일깨우는 것은 매우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상기한 일곱 센타들은 종종 일곱 색깔, 일곱 음계에 상응하는 것으로 설명되고 있다. 그리고 힌두 서적들에는 일정한 알파벳 문자, 일정한 생명력의 형태들을 그것과 결부시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예술적으로 연꽃 형태로 묘사되기도 하는데 그 연꽃들 하나 하나에 일정한 수의 꽃잎들이 정해져 있다. 우리는 그것들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는 에텔 질료의 소용돌이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 열려진 입구들 안으로, 선회하는 원반의 면과 직각 방향으로 아스트랄계로부터 로고스의 힘들 중의 하나인 이른바 원초적 힘이 분출해 들어온다.
그 힘은 본질상 칠중(七重)이다. 그리고 그 칠중의 힘은 모든 센타들 속에서 작용한다. 그러나 그 중 하나만이 각각의 센타 속에서 지배적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힘의 유입을 통해 육체는 신성한 생명을 공급받는다. 따라서 그것 없이는 육체가 생존할 수 없다. 사실상 원초적인 힘이 들어오는 통로가 되는 이 센타들은 육체의 존재에 필수적이며 모든 사람 안에 그렇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 활동의 정도는 매우 다양하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그 입자들이 비교적 느린 선회 운동을 하여 간신히 원초적 힘에 필요한 소용돌이만을 만드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살아 있는 빛으로 맥동치며 빛을 발하며 엄청난 힘을 통과시킨다. 이 경우 결과적으로 그 자아가 활동하는데 다양한 별도의 능력과 잠재력들을 열어 주게 된다. 외부로부터 센타 속으로 쇄도해 들어오는 원초적 힘은 그 센타의 표면에 파상적인 회전운동을 하는 이차적인 힘을 만든다.
이는 마치 유도 코일 속에 넣어진 막대 자석이 코일 주위에 수평으로 흐르는 전자파를 만드는 것과 같다. 그리고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온 원초적 힘 자체는 에텔 센타의 표면에 직선들을 그리며 방사된다. 이 경우 소용돌이의 중심은 바퀴의 축, 직선으로 방사된 원초적 힘은 바큇살과 같다. 이 바큇살의 수는 각각의 힘 센타들마다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연꽃으로 표현될 때 꽃잎의 수가 된다.
접시(센타)의 주위를 도는 이차적 힘들은 각기 나름의 파장(진폭)을 갖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색깔의 빛이 독특한 파장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빛처럼 직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비교적 큰 폭으로 파동치며(여러 사이즈가 있다) 운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 각각에는 극미한 파장들이 무수히 들어 있다. 그러나 그 정확한 비율은 아직 계산되지 않았다.
그 파동의 수는 바큇살의 수와 같다. 따라서 이차적 힘은 직선으로 방사된 원초적 힘(즉 바큇살들)에 대해 위, 아래로 움직이며 마치 바구니 짜듯 운동한다. 그 힘들이 소용돌이치며 돌 때 파동들은 독특한 모양을 만들어 낸다. 힌두의 서적들에는 꽃잎처럼 묘사했지만 그 보다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파형의 유리 접시를 더 닮았다.
이 파동(또는 꽃잎)들은 마치 진주처럼 아른거리는 무지개 효과를 낸다. 하지만 각각은 자기만의 주요 색깔을 띠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 센타들은 육체의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만 활동하고 있으며 그 색깔 또한 다소 흐릿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센타들이 각성되어 완전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의 경우에 그 칼라들은 눈부실 정도의 광채를 발한다. 뿐만 아니라 센타들 자체도 대략 직경 2인치의 상태에서 차차 접시 크기만큼 커지며 소형 태양처럼 광휘를 발한다.
척주의 기저부에 있는 첫 번째 센타는 4개의 살을 방사하는 원초적인 힘을 가진다. 그러므로 그 파동은 원(센타)이 4등분된 것과 같은 형태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것은 마치 십자가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십자가는 종종 이 센타를 상징하는데 이용된다. 또한, 때로 불타는 십자가는 미저골에 거하고 있는 ‘뱀의 불(쿤달리니)’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완벽히 각성되어 활동할 때 이 센타는 붉은 오렌지색을 띤다. 그 색깔은 비장 센타로부터 이곳으로 송출되어 내려오는 생명력의 타입과 매우 비슷하다. 사실상 각 센타들의 색깔은 비장 센타로부터 그곳(각 센타)으로 송출돼 오는 생명력의 색깔과 유사한 상응 관계를 보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배꼽 또는 태양신경총에 있는 두 번째 센타는 원초적 힘이 10개의 방사선으로 나뉘어 수용된다. 따라서 그것은 10개의 파동(또는 꽃잎)으로 분리되는 것과 같은 형태로 진동한다. 이 센타는 다양한 종류의 느낌, 감정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그 주요 색깔은 붉은 색 계열의 다양한 색깔들이 이상하게 혼합된 것으로 그 속에는 다량의 녹색 또한 포함되어 있다.
비장에 있는 세 번째 센타는 태양으로부터 오는 생명력(프라나)을 세분하여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생명력은 여기서 6개의 직사광선으로 분출되어 나가며 일곱 번째 것은 바퀴의 축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따라서 이 센타는 6개의 파동(꽃잎)을 가지며 다른 것들에 비해 특히 태양처럼 이글거리는 빛을 강하게 발한다.
가슴에 있는 네 번째 센타는 빛나는 황금색이다. 4개의 방사선이 각각 세 부분으로 나뉘어 총 12개의 파동이 된다. 따라서 원초적 힘은 12개의 살(파동)을 만든다.
목에 있는 다섯 번째 센타는 16개의 살을 갖고 있고, 따라서 16개의 명확한 구분이 생긴다. 이 센타에는 청색이 많이 들어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은색으로 빛난다. 흡사 물결 위에 비친 달빛을 연상시킨다.
미간에 있는 여섯 번째 센타의 외양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 한 부분은 주로 장미색을 띤다. 여기에는 노란색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부분은 주로 청자색을 띤다. 힌두 서적들에서 이 센타가 두 개의 꽃잎으로 묘사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두 부분의 파동을 세어 보면 각각 48개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센타의 원초적 힘이 방사선 숫자인, 총 96개의 파동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곱 번째 센타는 정수리에 있다. 이 센타가 각성되어 완전히 활동하게 되면 모든 센타들 중에서 가장 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때 이 센타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완벽한 색채 효과를 내면서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진동한다.
그것은 힌두 서적들에서 천 개의 꽃잎을 가진 연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그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이 센타의 원초적 힘의 방사선 수는 960개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이 센타는 여타 센타와 다른 또 한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중심 부분에 일종의 부속 소용돌이가 있는 것이 그것이다. 그 부속 소용돌이는 황금색을 띤 백광으로 빛나며 독자적으로 12개의 파동을 가져 부수적인 활동을 한다.
나는 힘 센타의 꽃잎들이 하나의 도덕적 성질을 상징하며 그 속성을 계발함으로써 그 중심이 활동하게 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것을 확신시켜 줄 만한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또한 정확히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지 나로선 알 수 없다. 왜냐하면 각 센타의 모습은 아주 분명하고 쉽게 인식할 수 있는 힘들(즉 원초적 힘과 이차적 힘)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어느 한 센타의 꽃잎들은 그 힘들이 각성되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활동하기도 안 하기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그것들의 발달은 도덕성과는 무관한 것 같다. 나는 이 센타들 중 일부가 완전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결코 도덕적으로 고도의 발전을 이룬 자들은 아니었다. 한편 매우 영적이고 도덕적으로 고결한 자들도 모든 센타들이 아직 완전히 활동하고 있지 않았다. 이를 통해 보건대 센타의 각성과 도덕성과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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