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을 당신은 어떻게 더 잘 이해하고
있을 수 있는가?
단순히 당신 자신에 대해 알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알려고 하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러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겠다.”라고도 말하지 말라.
노력으로는 결코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려고 애쓰고 있다”라고 말하지 말라.
애쓴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라.
“내 존재의 주-하느님으로부터.
지금 나는 이 순간에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안다.
그러게 될지어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려라.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준다.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말의 전부이며,
그 때, 당신이 원하고 있는 지식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모른다고 말하거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앎을 의심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성과 생명을 제한하고 있다.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나는 모른다.”라는 문구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법제가이고,
당신이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말하는 것은 그대로 법이다.
만약에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모를 것이다.
만약 “나는 결코 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그 것은 당신이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 생각의 느낌은 당신의 영혼에 기억되고,
당신의 영혼은 당신의 사고 작용을 충족시켜 줄 현실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컴퓨터와 같다.
날마다.
당신은 ‘의심’이라는 것을 당신의 지식에 입력한다.
‘부족’이라는 것을 입력한다. ‘
알지 못함’이라는 것도 실제로 당신의 지식에 입력한다.
당신은 당신의 왕국의 약탈자이다.
왜냐하면 의심과 제한만을 알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에게서 다름 아닌 생명력을 약탈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해두지만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지식 앞에 당신을 개방하는 문은
그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깨닫는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당장 일 수도 있고, 며칠이 걸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일어날 것이다.
항상 그렇다. 왜냐하면 ‘안다’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것이고,
당신의 욕구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안다‘라는 생각이 영혼에서 느껴져,
당신의 존재 안에서 발현되고
더 위대한 생각이 받아들여 질 수 있도록 뇌하수체를 연다.
‘안다’라는 것은 생각의 강이
무한한 흐름으로 당신에게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이다.
그리고, 앎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추측이 개입된 것이지만, 앎은 절대적인 것이다.
앎을 가져오는 것은 오르지 아는 것에 의한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누군가가,
아니면 당신 자신이 당신에게 억지로
어떤 진실을 확신시키려 하고 있다는 의미로
그 ‘믿는다’라는 말을 이해한다.
그 진실이라는 것은 당신이 현실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것을 믿기를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알기를 바란다.
깨치게 되는 것이 아는 것이다.
- 의심이나 믿음, 신념 혹은 기대 따위는 배제한 채로
이러한 것을 모두 추측이 개입된 것이다.
아는 것은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고,
또한 알게 된 것을 발현시킨다.
생각을 발현시켜 경험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당신의 존재의 일부분이지,
당신 자신에게 확신시켜야만 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라.
의심하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아라.
알라.
절대적으로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확고한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서 느껴지고
이것이 앎이 일어나기 위한 여백을 만들어 주게 된다.
당신이 앎의 문을 열어서
더 위대한 생각이 창조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을 때
천재성이 발휘된다.
만약 당신이 굳건하게 이렇게 말한다면,
“내 존재의 주-하느님으로부터,
나는 지금 이것에 대한 대답을 알며,
그 대답을 받는 상태에 있다. 그렇게 되리라”
그러면.
문제를 해결해 줄 앎이 생긴다.
그 순간에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생각으로 실현되거나
혹은 지식을 얻게 해줄 경험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당신 존재는 지금 당신의 앎의 상태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빠르게 조정할 것이다.
성취하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다.
애쓰고 탐구하고, 투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알라! 앎으로,
당신은 그것을 알기 위한 수용자의 입장에 있게 된다.
있을 수 있는가?
단순히 당신 자신에 대해 알라.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가 하는 것은
당신이 얼마나 많이 알려고 하는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더 많이 알기를 원한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러면 결코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려고 노력하겠다.”라고도 말하지 말라.
노력으로는 결코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많이 알려고 애쓰고 있다”라고 말하지 말라.
애쓴다고 알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하라.
“내 존재의 주-하느님으로부터.
지금 나는 이 순간에 알아야 할 것을 모두 안다.
그러게 될지어다.”
그리고 대답을 기다려라.
당신이 알고자 하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닫든지, 깨닫지 못하든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을
그 순간에 깨달음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문을 열어준다.
이것이 당신이 해야 할 말의 전부이며,
그 때, 당신이 원하고 있는 지식이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당신은 모른다고 말하거나
자신에게 다가오는 앎을 의심함으로써
자신의 창조성과 생명을 제한하고 있다.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나는 모른다.”라는 문구이다.
기억하라.
당신은 법제가이고,
당신이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말하는 것은 그대로 법이다.
만약에 “나는 모르겠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모를 것이다.
만약 “나는 결코 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당신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라고 말한다면,
당신은 결코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그 것은 당신이 이런 식으로 생각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그 생각의 느낌은 당신의 영혼에 기억되고,
당신의 영혼은 당신의 사고 작용을 충족시켜 줄 현실을 만들어낸다.
당신은 컴퓨터와 같다.
날마다.
당신은 ‘의심’이라는 것을 당신의 지식에 입력한다.
‘부족’이라는 것을 입력한다. ‘
알지 못함’이라는 것도 실제로 당신의 지식에 입력한다.
당신은 당신의 왕국의 약탈자이다.
왜냐하면 의심과 제한만을 알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고 말하는 방식으로
당신 자신에게서 다름 아닌 생명력을 약탈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말해두지만 당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과,
존재할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 지식 앞에 당신을 개방하는 문은
그저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깨닫는 것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당장 일 수도 있고, 며칠이 걸릴 수도 있지만 결국 일어날 것이다.
항상 그렇다. 왜냐하면 ‘안다’라는 단어는 절대적인 것이고,
당신의 욕구에 절대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안다‘라는 생각이 영혼에서 느껴져,
당신의 존재 안에서 발현되고
더 위대한 생각이 받아들여 질 수 있도록 뇌하수체를 연다.
‘안다’라는 것은 생각의 강이
무한한 흐름으로 당신에게 흘러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하는 문이다.
그리고, 앎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은 추측이 개입된 것이지만, 앎은 절대적인 것이다.
앎을 가져오는 것은 오르지 아는 것에 의한다.
무엇인가를 믿는다면
당신의 영혼은 누군가가,
아니면 당신 자신이 당신에게 억지로
어떤 진실을 확신시키려 하고 있다는 의미로
그 ‘믿는다’라는 말을 이해한다.
그 진실이라는 것은 당신이 현실로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에,
당신은 그것을 알지도 못하고 확신하지 못한다.
나는 당신이 어떤 것을 믿기를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알기를 바란다.
깨치게 되는 것이 아는 것이다.
- 의심이나 믿음, 신념 혹은 기대 따위는 배제한 채로
이러한 것을 모두 추측이 개입된 것이다.
아는 것은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 주고,
또한 알게 된 것을 발현시킨다.
생각을 발현시켜 경험 할 수 있게 함으로써,
이해를 얻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당신의 존재의 일부분이지,
당신 자신에게 확신시켜야만 되는 그 어떤 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저 “나는 알고 있다”라고 말하라.
의심하지도 말고 망설이지도 말아라.
알라.
절대적으로 “나는 안다”라고 말하는 순간마다.
확고한 생각이 당신 존재 안에서 느껴지고
이것이 앎이 일어나기 위한 여백을 만들어 주게 된다.
당신이 앎의 문을 열어서
더 위대한 생각이 창조적인 형태로 드러날 수 있을 때
천재성이 발휘된다.
만약 당신이 굳건하게 이렇게 말한다면,
“내 존재의 주-하느님으로부터,
나는 지금 이것에 대한 대답을 알며,
그 대답을 받는 상태에 있다. 그렇게 되리라”
그러면.
문제를 해결해 줄 앎이 생긴다.
그 순간에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이 생각으로 실현되거나
혹은 지식을 얻게 해줄 경험으로 실현될 수 있도록
문은 활짝 열려 있다.
당신 존재는 지금 당신의 앎의 상태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빠르게 조정할 것이다.
성취하기 위해서 수고할 필요가 없다.
애쓰고 탐구하고, 투쟁할 필요도 없다.
그저 알라! 앎으로,
당신은 그것을 알기 위한 수용자의 입장에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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